Ⅰ. 서론
한국이 개발원조를 시작한 지 어언 30여 년이 지나고 있다. 1987년 EDCF의 설립으로 차관 공여에 의한 원조사업을 시작하였고, 1991년 무상 원조 전담기관으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함으로써, 마냥 수원국이던 한국이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 이후 1996년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그로부터 13년 만에 동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 한국은 국제적으로 공식적인 공여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국제적 공여국으로서의 한국은 개발원조에 대한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두 가지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하나는 원조의 규모를 계속 늘려나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원조를 제공하되 그 “효과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책무에 부응하여 지난 30여 년 동안 원조 규모를 나름대로 계속 늘려오고 있으며, 지난해 3조 7,543억 원을 제공하였고, 2022년 예산은 4조 425억 원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ODA Korea, 2022). 새 정부는 ‘2022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에서 임기 안에 세계 10위권 ODA 국가로 도약할 것을 천명하였다(Han, 2022). 이러한 원조를 보다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2010년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하고,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개발협력위원회를 관계부처 장관, 민간 위원 등으로 구성하여 개발원조 정책을 종합 조정하고 있다. 이를 우산으로 하여, 원조의 양대 축의 하나인 무상 원조는 외교부가 무상 원조 전담기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하여 사업을 수행하면서 각 부처의 무상원조사업을 종합 조정하고, 다른 하나의 축인 유상원조사업은 기획재정부 관장의 EDCF를 통하여 수행한다. 한국은 이러한 틀 하에서 국제사회의 위상에 걸맞게 원조를 계속 늘려나갈 것이며, 원조 효과성을 높이도록 지속해서 노력해 나갈 것이다.
원조 규모에 있어서 한국은 국제적 입장 및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서 늘려나가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이러한 원조가 “효과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원조는 국가 재정자금이기에 그 효과성은 제대로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국제적 원조지침에도 원조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그 효과성을 엄격히 따지도록 하고 있다.1)
개발원조의 효과성이란 기본적으로 그 대상인 수원국에 지원하는 원조사업의 개발에의 효과성 또는 영향력(impact)이다. 그렇지만, 부수적으로 공여국에도 어떠한 형식으로든지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원조의 제공이 대개 자국의 컨설팅이나 물자의 형태로 제공되니 이들은 수원국에 남지만, 그 대가는 자국의 기업 또는 개인에게 떨어지게 된다. 아울러 원조가 효과성이 높아서 수원국의 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되면, 양국과의 관계가 더욱 긍정적인 것이 되어 상호 협력 기회가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원조 효과성의 주된 변수는 무엇인가? 원조의 효과성은 우선 그 원조사업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고, 그것이 잘 수행되었느냐의 여부 그리고 평가 및 환류의 적정성에 달린다고 볼 수 있다. 원조사업의 설계도 개발컨설팅의 몫이고, 원조사업의 수행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 및 환류도 역시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원조의 효과성은 원조사업에 의하여 수행되는 개발 컨설팅의 역량 또는 그 질에 의해서 주로 결정될 것이다. 흔히들 원조는 “물고기를 주기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게 하여야 한다”라고 한다. 고기 잡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컨설팅하거나, 이를 알기는 하더라도 제대로 “알게 할” 기술이 없다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발원조의 효과성은 거시적으로는 그 나라 개발 컨설팅의 종합적 역량, 그리고 미시적으로는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제공되느냐에 의해서 주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한국이 개발원조의 30여 년의 역사를 지나면서 하나의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리의 개발원조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수행되고 있으며, 우리의 개발 컨설팅 역량 또는 개발컨설팅 산업은 어느 수준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에 따라 우리 원조의 효과성은 어떠하고 우리 경제는 어떠한 영향을 받았을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단계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첫 단계는, 논의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서, 개발원조와 개발컨설팅의 관계 그리고 개발컨설팅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개발컨설팅 산업 및 그 시장을 조감함으로써 개발컨설팅 산업이 원조의 효과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우리 경제에 어떠한 기회를 줄 수 있는가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개발컨설팅 산업의 발전이 그러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면,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에 대하여 그 잠재적 경쟁력과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그것이 어떠한 귀결로 연결되고 있느냐를 분석해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에 대한 SWOT(strengths, weaknesses, opportunities and threats) 분석을 바탕으로 그 잠재력을 평가하고, 현실적으로 지난 30여 년 동안의 원조 과정에서 우리 개발컨설팅 산업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진단하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본 연구의 주된 논의로서, 개발컨설팅 및 국제 개발컨설팅 시장에 대한 이해와 한국 개발컨설팅 산업의 잠재적 경쟁력과 산업에 대한 진단을 토대로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나?”라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개발컨설턴트가 하는 일이 그러한 역할이며, 개발컨설팅 산업이 우리 경제에 어떠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면, 개발컨설팅 산업을 활성화하여 국제 원조 시장에서 우리의 역량에 걸맞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어떠한 단계적 전략을 구사할 것이며, 그 구체적 방안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고자 한다. 끝으로, 맺음말로 요약 및 정리를 하여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개발컨설팅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는 그리 흔하지 않고, 다만 실용적 목적으로 정부의 관심에 따라 몇 차례 연구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과거의 간헐적 연구가 그동안 정부 정책에 본격적으로 반영되지는 못한 터에 최근 개발컨설팅 산업을 활성화하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본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이에 본 연구는 이러한 필요에 부응하여 정부의 정책을 위한 실용적 연구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연구의 방법론에서는 지금까지의 문헌 조사를 토대로 해외 사례에 대한 비교분석 그리고 관계 전문가들과의 심층적 토론의 방법에 주로 의존하였다.
II. 국제개발 컨설팅 시장과 한국의 기회
개발컨설팅(development consulting)은 개발원조 사업의 과정에서 투입되는 지적 요소이다. 그런데 개발컨설팅이 원조사업에서 어떤 부면을 포함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그 한계가 다소 모호하다. 어떤 견해는 정책자문이나 기술적 자문 등의 일정한 컨설팅 형식을 갖춘 것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견해는 아주 넓은 의미로 보기도 한다. 다자개발은행과 공여국의 원조기관들은 대개 후자의 의미로 개발컨설팅을 쓰고 있다. 세계은행은 컨설팅 서비스를 “컨설턴트에 의하여 제공되는 직업적 성격의 서비스로서 연구, 설계, 조직화, 프로젝트 관리 등에 관한 그들의 기능(skills)을 사용하는 것, 채무국에 대하여 자문하거나 필요한 경우에 그들의 역량을 구축하는 것들”로서 정의하여 후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2) 이렇게 볼 때, 개발컨설팅은 개발원조의 사업을 하기 위하여서는 사업의 형성, 타당성 조사, 사업수행, 평가 등 일련의 과정에서 필요한 지식(knowledge), 기술(technology), 기능(technique or skill), 정보(information) 등을 제공하여 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서비스를 포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개발원조 사업이 무상(grants)이든, 유상(concessional loan)이든 상관이 없다.
일본 해외컨설턴츠협회(ECFA)는 개발컨설팅에 대한 정의에 있어서 위의 다자개발은행과 같은 입장에서 개발컨설팅의 과업, 즉 개발컨설턴트가 하는 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ECFA, 2002). 이를 <그림 1>을 가지고 설명하고자 한다.
개발원조는 크게 프로젝트 형성(project formation),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ment), 평가 및 환류의 세 과정으로 걸치면서 일이 수행된다.
먼저, 프로젝트 형성은 다시 국가개발계획 작성, 지역 ․ 섹터별 개발계획 작성, 프로젝트 계획 ․ 입안의 세 세부 과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에 이은 행정적 단계로서 타당성 조사, 제안요청서 작성 및 입찰 관리의 과정이 진행된다.
그 다음이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ment)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과정이다. 이는 본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산출물을 생산하는 과정과 모니터링 및 성과관리를 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된다.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산출물을 생산하는 과정은 대개 사업 실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역량 배양 및 산출물 생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다.
프로젝트의 시행과 성과관리가 끝나면 적정한 시기에 동 사업에 대한 평가 및 환류의 단계를 거쳐서 그것이 다음 단계의 새로운 사업에 반영됨으로써 프로젝트의 순환이 이루어진다. 이 순환 과정에서 필요한 가치와 기술, 지식을 투입하여 이를 수행하는 모든 일이 개발컨설턴트의 과업이며, 개발컨설팅의 일이다.
이러한 의의를 가지는 개발컨설턴트의 과업 또는 개발컨설팅의 업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ECFA, 2002).
-
(요소 1) 개발컨설팅은 그 대상 업무 면에서 볼 때, 개발도상국이 당면하는 국가의 개발 또는 국민 생활의 모든 부면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
(요소 2) 개발컨설팅은 단순히 만들어진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써 지식으로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므로 그 성격상 상당한 기술력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이다.
-
(요소 3) 개발컨설팅은 환경, 문화, 언어, 역사가 다르며 개발 및 지식의 격차가 상당히 존재하는 나라의 정부 공무원을 상대로 하는 것이니만큼 상당한 소통력과 기획력이 있어야 한다.
첫째 요소는 개발도상국 정부가 당면하는 모든 문제가 컨설팅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자연히 국가의 모든 개발 또는 국민 생활의 과제를 포함한다. 구체적으로 각종 개발 관련 계획 또는 정책의 수립, 집행, 평가 및 모니터링, 농업 및 농촌의 개발, 도시 및 주거 환경, 보건 및 위생, 사회간접자본의 형성, 취약계층에 대한 대책, 환경, 성 주류 등 국민 생활에 관련되는 모든 부면을 포함하는 것이다.3) 즉 한 나라의 개발과 관련된 어떤 분야의 지식 또는 전문성이라도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둘째 요소는 개발도상국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들은 대개 여건상 몹시 어려운 제약조건 아래에서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원도 투입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상당한 전문성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해당 분야 또는 이슈에 대한 상당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개발도상국 또는 특히 해당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울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금전이나 기초적인 지식만 가지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므로 그저 아는 정도가 아니라 잘 알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셋째 요소는 개발컨설팅은 언어, 문화, 역사의 상이성 및 발전 및 지식의 격차가 큰 대상 또는 상대방과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언어의 장애를 극복하고,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그들이 필요하고 가능한 성과를 도출하며 그들을 설득하고 대화하는 일이기 때문에 상당한 소통력과 기획력이 있어야 한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개발 컨설팅은 우리가 일상 비즈니스로 하는 국내 또는 해외와 상품 거래를 하는 것과는 달리,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을 파는 일로서, 어떠한 분야이건 그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우리와는 모든 면에서 여건이 다른 국가 또는 지역을 대상으로 그들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지식과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니, 위와 같은 세 가지 요소로서 업무가 수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에서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개발컨설팅이 제대로 효과성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4)
개발컨설팅은 국가적으로는 하나의 산업으로 존재하게 되며, 국제사회에서 거대한 시장에서 이들 각국의 개발컨설팅 산업이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개발컨설팅 산업이라고 해서 해당 특정 분야의 전문 기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의 II.1.절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개발컨설팅은 여러 분야에서의 컨설팅을 포괄하는 것임으로 기업의 분야도 다양하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컨설팅 서비스는 엔지니어링 기업, 재무적 자문, 회계 기업, 법무 법인 및 경영 컨설턴트 등과 같은 실체(entities)에 의하여 제공되었다. 근래에는 그 분야가 정보기술로부터 농업 서비스를 거쳐 환경기술까지의 거의 모든 종류의 전문성과 성향(orientation)을 가진 기업을 포함한다. 그들은 수천의 고용자를 보유하고 넓은 폭의 규율(discipline)을 커버하는 갖춰진 기업으로부터 아주 특화된 초점을 가진 작은 인원을 가진 기업에 걸쳐 있다. 부가하여, 많은 수의 개인 전문가들이 시장에 참가하여 그들의 서비스를 직접 또는 특정한 컨설팅 기업을 통하여 제공한다. 비정부기관, 연구기관, 대학, 국제기관도 때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다.”(Asian Development Bank, 2008: 1). 개발컨설팅 산업이라고 할 적에는 이상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원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 기업 및 실체(entities)를 포괄하는 것이다.
개발컨설팅의 대상은 지구촌 공동체의 핵심적인 과제라고 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로서, 이는 새천년개발목표(MDGs) 및 이어진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로 잘 나타나고 있다. 지구촌 공동체는 지구촌의 개발을 돕기 위하여 개발원조를 아주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OECD DAC 회원국과 다자개발은행(MDB,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을 포함한 각종 국제기구가 그 중심이 되어 있고, 그 외에도 여러 나라 및 민간 기구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국제 개발원조 시장의 규모는 공적 원조의 경우, 2021년 실적이 1,789억 달러이고, 민간 부문에서 그에 버금가는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OECD, 2021). 이상과 같은 금액의 재원이 세계 시장에서 용역 및 물자의 형태로 그리고 부분적으로 현금지원 형식으로 수원국에 제공되는 것이다. 개발원조는 컨설팅 외에 물자나 현금 형태로도 제공되지만, 후자도 컨설팅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상의 국제 개발원조 시장이 개발컨설팅의 주된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개발컨설팅 시장이 반드시 원조 시장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국제적으로 원조가 아니더라도 고급 지식 및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규모의 고(高)부가가치 컨설팅 수요 또는 맞춤형 서비스 수요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을 망라한 각국 정부, 공공기관, 대기업, 민간 기구 등에 의하여 아주 큰 시장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를 테면, 두바이의 도시설계 및 고급 건축물, 시설물 등의 설계, 호주의 신수도 캔버라의 설계, 한국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의 타당성 분석 등 부지기수이다. 최근 회자하고 있는 것의 하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5천 억 달러(640조 원) 규모의 신도시 네옴시(Neom City) 건설 프로젝트이다(Ryu & Jung, 2022). 이러한 고부가가치의 설계 및 컨설팅은 주로 영미의 컨설턴트가 공고히 장악하고 있다.5) 우리가 제조업 다음 단계로 지식산업 단계로 이행한다는 것은 서구 선진국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러한 시장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 원조에 의한 개발컨설팅 산업은 상품에 대한 무역 거래와는 달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
(특징 1) 개발컨설팅은 컨설팅산업의 하나로서 고(高)부가가치의 노동집약적 지식산업이다.
-
(특징 2) 개발컨설팅 산업은 국제사회의 핵심 과제인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고 있어 국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과제를 풀기 위한 일로서 전후방 연관 효과가 아주 큰 산업이다.
-
(특징 3) 국제적으로 개발컨설팅 산업은 서구의 선진 공여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자신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개발컨설팅 산업의 첫째 특징은 제공하는 컨설팅에 따르는 개발에는 수익이 따르기 마련이며, 지식산업이기 때문에 배타적이지 않고(non-exclusive), 고갈되지 않아(non-exhaustible) 고정 비용이 낮기 때문이다. 컨설팅은 상품이나 플랜트 수출과 달라 대부분 인건비로 회수되는 지식산업이다. 산업의 발전 단계에서 1차 산업단계에서 제조업 중심의 2차 산업단계로 진화하고, 다음으로 서비스 및 지식산업의 단계로 진화하게 되는데, 개발컨설팅 산업은 제조업 다음 단계로 진화하게 되는 지식산업의 총아이다.
개발컨설팅 산업의 둘째 특징은 개발원조 사업이 각각의 국별로 개발에 중요한 경제적 타당성이 높은 사업 위주로 선정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도 중요할 뿐더러 전후방 연관 효과도 크기 마련이다.
개발컨설팅 산업의 셋째 특징은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가진 선진 공여국들이 국제 개발원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 공여국 개발컨설팅 기업들은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큰 규모로 시장에서 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개발컨설팅 기관인 Chenonics의 경우, 연 매출 16억 달러에 고용원은 5,000명으로서 100개 국가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Chemonics, 2022). 호주를 기반으로 한 개발컨설팅 기관인 Palladium의 경우, 연 매출 4억 달러, 고용원 2,500명으로서 75개 국가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Palladium, 2022). 일본의 개발컨설팅사 IC Net을 보면, 연 매출 30억 엔, 고용원 200명, 8개 국가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IC Net Limited, 2022). 이렇게 국제 개발컨설팅 시장에서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각국 기업과 개인들이 경쟁하면서 국제개발을 촉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Kumar, 2019).
선진공여국들이 이렇게 개발원조시장을 주도하게 됨에는 그 배경이 있을 것이다. 선진 공여국들은 대개 역사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통하여 다른 나라들과의 경제적 관계를 맺는데 관심을 가져왔고, 이것이 전후 국제 개발협력을 주도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개발 내지는 개발협력에 관한 학문적 연구나 인력 양성이 활발하게 되었고, 원조 규모의 확대에 따라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 증대로 이어지고, 자유시장 경제의 바탕에서 민간 기업들의 역동성이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가게 되었다. 기업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직원들을 국제기구의 임시로 보낼 수 있게 되었고, 이들이 해당 국제기구의 사업을 수주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위와 같은 국제원조시장을 주도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이들 서구의 선진 공여국들과는 배경이 좀 달랐다. 정부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적 임무를 수행하는 산업정책이 개발원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본은 식민지 경영의 경험이 있으므로 일본의 원조가 일본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일찌감치 해외컨설턴트협회를 설립하여 원조자금으로 일본 기업으로 하여금 많은 개발조사 사업을 상당 기간 대규모로 실시하였으며, 원조 서비스의 조달가격을 다자개발은행의 그것보다 높게 설정하여 기업들이 지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6) 이상과 같이 선진 공여국들이 개발컨설팅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각각 자국의 원조를 바탕으로 민간 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 영역을 넓혀나가는 동시에 정부에서 인력 양성, 원조 조달가격 정책 등으로 기업 성장을 적절하게 뒷받침하여 온 데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개발컨설팅 시장에서 주도적 임무를 수행함은 그들이 모든 면에서 강점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현재 수원국들과는 판이한 역사적 경험 및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수원국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점이 있기도 하다. 수원국들의 입장에서 볼 때, 서구 공여국들은 자신들을 이해할 수 있기에는 너무나 서로 다른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볼 때, 한국과 같이 수원국으로부터 공여국의 경험을 가진 경우는 이것이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원조도 우리가 경제적으로 여건이 되어야 할 수 있고, 원조의 방법 여하에 따라서는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가 개발원조를 많이 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만들어야 하고, 역으로 그렇게 원조를 잘 하게 되면, 우리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7)
그런데 한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원조를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의 시기를 뒤로 하고, 현재는 장기적 침체(secular stagnation) 상황이라고들 한다. 대내적으로 심각한 인구 고령화에다가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분쟁, 코로나 팬데믹, 인프레 대책 등이 어려움을 가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으려면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먼저 극복할 수 있어야 할 터인데 그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첫째,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핵심적인 과제가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며, 이는 우리 경제의 문제 해결에 마스터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경제가 성숙해짐에 따라 산업발전의 단계가 제조업 주도에 이어서 서비스 또는 지식산업 주도로 고용이 이행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셋째,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제적 갈등과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에 대응하여 경제적 안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것도 긴요하다.
그런데 첫째의 일자리 창출은,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 보면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국내 투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지만, 늘리더라도 4차 산업혁명의 기술혁신 시대에서 투자의 고용 유발효과가 아주 낮다. 더욱이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증가 추세이고, 대신 한국을 향한 해외직접투자(FDI)는 정체되고 있다. 둘째의 지식산업으로의 이행도 쉽지 않다. 사실 우리의 제조업과 건설산업 등 거의 모든 이차 산업에 있어서 거대한 시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으로부터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으며, 고급 지식 및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지식산업에서는 전통적 선진국이 확고히 장악하고 있는 여건에서 넛크래커(Nut-cracker) 신세에 몰려 있는 것 같다.8) 소득 수준에 비한 국가컨설팅지수(NCI, National Consulting Index) 평가에서 한국은 아주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9) 셋째의 경제적 안보에 대한 위협은 자원이 없는 국가로서 에너지와 원료를 해외에 의존하여 상품 수출을 젖줄로 삼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한시라도 안심할 수 없는 과제이다.
이상과 같이 볼 때, 어느 의미에서는 우리가 원조에 주력하기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안보에 주력하여 우리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는 그것이 더욱 긴요한 과제인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내가 여유가 있고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의 해결책이 안에서 볼 때 잘 보이지 않는다면, 이를 바깥에서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바깥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공여국으로써 제공하는 개발원조가 우리의 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개발원조 내지는 그 수단이 되는 개발컨설팅 산업이 한국 경제의 이상과 같은 과제 해결에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산업이 한국 경제에게 어떠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가.
앞 장에서 논의한 개발컨설팅 산업의 네 가지 특징을 음미해 보면, 이것이 위와 같은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과제를 해결하는 문제와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첫째, 무엇보다 개발컨설팅 산업은 한계에 부딪힌 일자리 창출에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컨설팅은 고부가가치의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서, 고용 효과가 아주 높은데, 더욱이 비구속화(untied) 개발원조 시장에서 우리가 국제개발원조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상당한 좋은 일자리 창출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앞에서 우리 경제는 제조업으로 이만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앞으로는 제조업만으로 살기 어렵고 고부가가치의 지식산업도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개발컨설팅 산업은 이러한 지식산업의 총아로서 그 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제조업으로 성공한 한국이 지식산업으로 다시금 도약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 우리의 개발 컨설팅산업의 경쟁력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개발원조의 효과성을 높이는 첩경이 될 것이다. 이는 개발도상국과의 관계를 깊게 하여 경제적 안보의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줄 것이다. 개발도상국들과의 신뢰 관계가 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더 깊은 경제협력과 투자의 관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적 침체로부터 활력을 회복하는 요체가 아닐까.
이상과 같이 볼 때, 개발원조가 단순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를 재정적으로 돕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발원조를 통하여 국제개발컨설팅 산업이 활성화될 경우,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과제인 지식산업의 발전을 통하여 장기적 정체 현상에 빠져들고 있는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고, 수원국들과의 깊은 신뢰 관계로 경제협력 기회를 창출하고 경제적 안보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한계에 부딪힌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는 것이다(Chun et al., 2006).
III. 한국의 국제개발컨설팅 산업 분석과 그 귀결
개발컨설팅 산업이 우리에게 위와 같은 기회를 줄 수 있다면, 과연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이 치열한 국제 원조 시장에서 이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을까? 이의 검토를 위한 우리 개발컨설팅 산업에 대한 SWOT 분석이 필요하다. 그 검토 기준은 앞 장에서의 개발컨설팅 3대 요소 및 개발컨설팅산업 3대 특징이 될 것이다. 전자는 주로 강점 및 약점, 그리고 후자는 주로 기회와 위협에 관련될 것이다(<그림 2> 참조).
먼저, 개발컨설팅의 강점 및 약점과 관련하여, 개발컨설팅의 첫째 요소인 대상의 다양성 및 포괄성에 있어서, 한국은 당 세대에서 원조에 의존한 세계 최빈 국가의 하나로 출발하여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적 산업국가로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렇게 한국은 국가 개발 또는 국민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생생한 발전 경험이 있다. 이는 선진 공여국에 비하여 큰 장점이다. 한국은 OECD 공여국 회원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수원국의 경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은 선진 공여국 및 여타 공여국들이 가질 수 없는 한국의 태생적인 비교 우위성이다. 그 이외에도 한국이 IT 및 제조업 강국이라는 점,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이 겪어야 했던 식민지 피지배, 극심한 가난과 전쟁을 겪었다는 점은 개발도상국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Chun, 2018). 한국이 이러한 강점을 가졌다는 점은 우리의 강점이라고 하기에 앞서서 국제사회에 대한 한국의 역사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컨설팅에 있어서 한국의 약점을 보면 이상과 같은 강점이 워낙 커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개발컨설팅의 둘째 요소인 “전문성 및 기술성”의 관점에서 볼 때, 당장 보기에는 선진 공여국보다 뒤지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개도국의 여건에 맞는 전문성과 기술성을 갖출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선진 공여국은 국제사회의 개발 협력을 오랫동안 주도하고 수행하면서 전문성과 기술성을 축적해 왔지만, 우리는 앞 절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수원국들과의 역사적 경험의 공통성으로 인하여 누구보다도 그들을 잘 아는 처지에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들의 강점을 능가하여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컨설팅의 셋째 요소인 “소통력과 기획력”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한국이 약점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 점에 있어서 최근의 한국은 상황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서 자란 한국의 젊은 세대는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언어상의 큰 핸디캡 없이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우리도 이미 30여 년의 개발원조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개발컨설팅 산업의 기회와 위협요소를 볼 때, 한국은 큰 기회를 가지고 있는 대신 위협요소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교육에 노출된 우리 젊은이들이 큰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며, 여기에 개발세대의 풍부한 개발 경험이 보탬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앞 절에서 논의한 개발컨설팅산업이 한국 경제에 줄 수 있는 좋은 일자리, 컨설팅산업 발전 기반, 경제적 안보기반 등의 기회를 현실로 만드는 데 앞장 설 것이다. 개발컨설팅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초래할 수 있는 위협요소는 그리 크지 않다. 시장 진출에 따른 위험과 불확실성은 기업의 기업가정신에 의하여 능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며, 다만 정책 조정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합의(consensus)를 이루는 문제는 상호 이익이 되는 해결책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 개발컨설팅 산업에 대한 SWOT 분석의 결과, 강점은 약점보다 훨씬 크고, 기회는 위협을 크게 능가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한국은 수원국으로부터 공여국으로까지의 발전과정에서 태생적으로 다른 나라들이 가지지 못한 비교 우위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같은 한국의 존재는 국제원조시장에서의 수요자 선택권을 넓히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한국이 국제 개발컨설팅 시장에서 한국만이 가진 역사적 경험의 비교우위성을 발휘할 수 있는 큰 잠재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자신의 원조 효과성과 경제적 기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약점이 되는 소통력과 기획력을 가진 인력의 부족은 정책적인 인력 양성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며, 위협요소가 되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일치를 바탕으로 정책 조정을 해나가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개발컨설팅 산업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이 잠재적 경쟁력을 잘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과제이다.
30여 년 전 한국은 그동안 수원국으로 원조를 받기만 하다가 갑자기 원조를 주는 상황이 되면서 위의 개발 컨설팅을 하게 되었다. 원조 당국이 출발 당시 다음과 같은 제도적 틀에서 원조사업을 시행하게 되었다. 원조를 주는 것이 생소하다 보니 일단 당시의 예산 회계 제도 그리고 공공부문의 여건의 틀 안에서 추진하게 되었다.
첫째, 원조 서비스, 즉 국제개발 컨설팅을 시장에서 조달하면서 정부의 예산회계법의 기준에 정한 대로 국내에서의 기술 용역 단가 또는 연구용역 단가를 적용하는 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비즈니스의 지속을 위한 간접비나 이윤은 재정 절약의 원칙으로 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둘째, 한국은 개발 초기에 개발을 정부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개발에 관한 여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공공기관이 많이 설립되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범위가 정부가 담당하는 광범위한 역할에 걸쳐 있다.
선진 공여국의 경우에는 우리와 달랐다. 위의 둘째 조건이 없는 여건에서 개발원조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차곡차곡 시행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개 식민지를 경영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식민지국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일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늘어나는 원조사업을 바탕으로 민간 기업들이 활발하게 성장하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었다. 개발 협력의 본질을 알고 있었던 일본은 II.2.절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일본 기업이 원조를 통하여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 출범이 일본국제협력단(JICA)를 본으로 하였지만, 이러한 정책적 측면은 보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개발원조는 위와 같은 여건은 개인이나 기업이나 이를 하나의 직업이나 비즈니스로 영위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었다. 개인으로서는 이를 하나의 생업으로 삼기 어려웠으며, 기업도 고용하는 개인이 직업인으로서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기업 수익도 제대로 인정을 못 받게 되니 개인처럼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조사업 또는 개발 컨설팅도 국제 시장에서 경쟁하는 하나의 비즈니스인데, 우리는 이를 부업으로만 가능한 원조 서비스 조달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발주기관으로서는 초기 아무런 개발컨설팅 역량이 축적되어 있지 않은 여건에서 다양한 공공기관과 풍부한 퇴직 인력의 존재는 그나마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발원조 사업을 비 전업적(part-time)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그 비즈니스가 요구하는 기술성과 전문성 등을 갖추기 어렵고 기술축적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공공기관으로서는 콘텐츠는 풍부하나 개발 협력은 자신의 고유 목적의 사업이 아닌 부수적 업무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 큰 관심이나 비중을 두기 어려웠다.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공공기관의 개발원조 사업의 수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발주기관은 다시 그 보완책으로 국가별로 사무소를 두면서 국제적 원조사업을 하는 비정부기관(NGOs)에게 관심을 두게 되지만, 비정부기관(NGO)의 주된 목적이 “민간 간의 협력(NG2NG)”을 본질로 하다 보니 “정부대정부(G2G)”의 개발원조에는 최선의 대안이 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우리의 개발원조가 이상과 같이 상당히 비 전업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개발컨설팅은 앞 장의 개발컨설팅 요소의 관점과는 당연히 괴리되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원국의 개발과제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관점에서 이에 관한 충분한 이해나 지식이 없이 진행되기도 하고, 컨설팅 상대에 적용하는 전문성과 기술성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으며, 소통 역량에 있어서 시니어 중심의 분야별 전문인력 위주로 투입되다 보니 아무래도 선진 공여국보다 뒤질 수밖에 없었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개발원조의 틀 하에서 원조사업에 의하여 제공되는 개발 컨설팅이 그 특성에 맞추어 전문성 있게 수행되지 못함으로써, 자연이 그 산업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게 되었다. 비전문적, 비직업적으로 하다 보니 “산업”이라고 할 정도가 되지 못하는 취약성이 드러났다.
우리의 개발원조가 이러한 개발컨설팅 산업의 취약성을 그대로 안고 진행된다면 그 귀결이 어떻게 될까? 이대로 가더라도 우리의 개발원조가 온전히 진행될 수 있을까? 원조의 효과성으로 기대되는 그 많은 경제적 기회는 고스란히 잃어버리게 되고 마는가? 여러 가지의 의문이 남는다.
앞 장에서 원조의 효과성은 개발컨설팅 역량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고 하였는데, 개발컨설팅 산업의 취약성은 바로 원조의 효과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두 가지의 문제를 초래한다. 하나는 원조 당국으로서는 수행기관의 비전문성 하에서 투입 요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조 규모가 커지고 사업이 대형화되면서 이러한 투입 요소 위주 통제의 한계는 더욱 심화할 것이다. 후자와 관련하여,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개발원조는 명목상으로 그 규모가 66배로 증가하였다. 그에 상응하여 단위 프로젝트의 규모 및 사업 기간도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개발원조 수행 역량(delivery capacity)은 크게 달라짐이 없다. 말하자면 보내는 물의 양은 60배가 늘어났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터이나 송수관은 옛것 그대로인 셈이다. 그 송수관이 얼마나 견디어낼 수 있을까. 이대로는 우리의 원조 관리에 곧 한계가 올 것이다.
한국 원조의 효과성이 국제적 기준에 미흡하게 되면, 다시 두 가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원조에 있어서 국제적 조화(international harmony)를 기대하기가 점점 어렵게 될 것이다. 저 개발의 환자를 돕는 데는 국제적 의료진(medical team)의 일원이 되어서 역할분단 아래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처방하여야 효과적일 터인데 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앞 장에서 논의한 바 있는 효과성 있는 원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일자리 창출, 경제적 안보기반, 경제적 활력의 회복 등 우리 경제에의 기회를 모두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 경우, 그저 우리가 원조를 그만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자기 만족하는 것으로 그치고 그 원조가 가져다줄 수 있는 가치는 버리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절실한 일자리 창출의 블루오션을 개발원조시장에서 열어갈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외면하는 것이다.
그 단적인 근거가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서 본 우리 기업의 국제원조시장에서의 역할이다. <표 1>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무역 및 개발원조의 중심국가의 하나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2021년 기준으로 국제무역에서는 세계 7위, 개발원조에서는 15위를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US News & World Report>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국가별 순위 분석에서 2022년 국력 부문에서 한국이 일본,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6위를 기록하고 있다.10)
구분 | 2020 | 2021 | 비고 | ||
---|---|---|---|---|---|
규모 | 국제순위 | 규모 | 국제순위 | ||
국제무역 | 980.3 | 7위 | 1,259.5 | 7위 | |
개발원조 | 2.25 | 16위 | 2.86 | 15위 | 5년내 10위 목표 |
그런데 이러한 국가의 국제원조시장에서의 역할을 보면 너무나 초라하다. <그림 3>은 세계은행에서 체결한 큰 규모(USD $250,000 이상)의 조달기업계약 통계(FY 14-22)인데, 국제무역 7위의 공여국 한국이 국제원조시장에서 30위 안에도 들지 못하고 32위(USD $6 m.)를 기록하고 있다.11) 이렇게 한국의 경제적 위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국 기업의 다자개발은행(MDB) 사업 수주 규모는 바로 우리 개발컨설팅 산업의 취약성을 말해주고 있다.
문제는 한국 기업이 국제원조시장에서 수주를 덜 하는 경제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북한이 개방되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개발원조와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처지에서 보면, 북한의 개발을 위한 진출에 있어서 한국처럼 좋은 파트너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이 취약하면 이 모든 잠재적 기회도 놓치고 말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앞 절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의 개발컨설팅 산업의 높은 잠재적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간 개발원조(ODA) 추진과정에서 개발컨설팅 산업 활성화의 뿌리를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한 점은 아쉬운 일이다. 원조를 받기만 하던 한국이 갑자기 공여국이 되었으니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다. 다행히 그동안 정책당국과 원조 기관들이 이의 개선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 온 덕분에 어느 정도의 씨앗은 뿌려졌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이를 잘 살려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개발컨설턴트들이 국제 원조 시장에서 활발하게 뛸 수 있도록 정책을 준비할 때이다.
IV. 국제개발 컨설팅산업 활성화 방안
이제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을 어떻게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키우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 일은 당장 어떤 한두 조치로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달성하여야 할 기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적 전략이 있어야 할 것이다.
개발컨설팅 산업을 활성화하는 기본 목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는 우리의 기업 또는 개인 개발컨설턴트가 국제 개발원조 시장에서 우리가 가진 잠재적 경쟁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나름대로 뚜렷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은 대학을 나오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이 시장에서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은 이러한 국제 개발원조 시장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의하여 앞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은 여러 경제적 기회를 실현하게 되어 국제사회의 공동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목표를 실현할 전략은 개발컨설팅의 공급 측면 및 수요 측면을 어우르는 종합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쪽 만의 대책으로 위의 목표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째, 공급 측면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개발컨설턴트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 원조 당국의 입장에서는 현재의 서비스 수준에서 가격만 올리는 것은 재정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니 그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개발 컨설팅산업을 육성하는 일의 열쇠는 수준 높은 개발 컨설팅을 수행할 수 있는 양질의 전문 개발컨설턴트를 국가적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양성하면서, 그에 맞추어 수요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인력 양성책은 우리가 경제개발의 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주 유효한 정책으로 채택되어 온 것이다. 한국은 산업 불모지에서 한국인은 정밀 공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국제적 편견에 대응하여 아주 전략적인 기능인력 양성책을 도입하였다. 국제수준의 모델 특성화 공업학교와 수많은 직업훈련센터(TVET)를 설립하여 이들 기능공을 나라의 보배라고 아꼈다. 이어서 기술 개발 및 과학 발전을 위하여 역시 전략적으로 한국과학기술원(KIST)을 설립하고, 영재 과학도를 양성하기 위하여 KAIST를 설립하였으며, 과학기술고등학교를 전국적으로 설립하고 전문 대학 및 대학원에 대한 투자를 최대한으로 늘렸다. 이제 지식산업의 시대에 필요한 컨설턴트를 양성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공공 투자가 마중물 역할을 하여야 한다.
둘째, 양질의 개발컨설턴트 공급을 늘리면서, 그들에게 일자리를 충분히 마련해 주는 수요 면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 대우가 좋으면 인재가 모이고 인재가 모이면 그 산업은 번성하기 마련이다. 개발컨설팅을 업으로 선택하는 개인이나 기업이 지속성을 가지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의 원조 인적자원, 즉 공공기관, 대학, 비정부기구(NGO), 개발컨설팅 기관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의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 대학의 연구 역량, NGO의 현장 기반, 개발컨설팅 기관의 협력사업 관리 전문성 등이 결합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제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각자 부족한 역량이 있고, 이를 다른 파트너를 통하여 보완하면 된다. 그래서 이들이 하나로 국제 시장에서 경쟁해 나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12) 이렇게 되면,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기업들이 크는 여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II.2절의 개발컨설팅 정의에 해당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원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인, 기업 및 실체(entities)들이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앞 장에서 개발컨설팅은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고 했는데, 이 특징에서 요구하는 기능 셋(skill set)을 가진 개발컨설턴트가 필요한 것이다. 선진 공여국 같으면 역사적 식민지 지배 경험과 오랜 개발 협력사업을 통하여 자연적으로 그러한 기능 셋(skill set)이 형성되어 왔지만, 우리는 그러하지 못하였으니 교육 훈련을 통하여 습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발컨설팅 산업을 뿌리내리게 하는 첫걸음이 개발컨설턴트로서 필요한 소양을 가진 인력을 양성하여 시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개발컨설턴트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앞 장에서 언급한 개발컨설팅의 세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는 수원국의 개발 문제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정보,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성과 기술성, 그리고 이러한 일을 설계하고 소통하는 기획력과 소통력을 향상하도록 하는 데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대상 국가가 다양하고, 분야가 역시 다양하며, 발주기관이 필요로 하는 개발 협력의 내용이 다양하니,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은 수요를 맞춤형으로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원조 기관이 수요로 하는 개발컨설턴트의 소양 및 수준별로 인력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개발컨설턴트 양성 규모는 시장 상황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교육 훈련의 범위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
국제적 표준의 사업관리 지침으로서 프로젝트 관리 전문(project management professional), 프린스2(Prince2) 등에 대한 교육
-
국가 개발정책 관련 제반 분야에 대한 기본적 이해
-
국제협력 사업 운영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스킬
-
개발도상국으로서의 대상 국가에 대한 이해와 정책적 소양
-
협력사업의 성과관리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스킬
교육 훈련의 수요 및 사업 타당성과 관련하여, 현재와 같은 개발원조(ODA) 수행 방식을 지속할 경우 전문 컨설턴트의 역할이 미약하므로 교육 훈련의 수요도 미약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 훈련의 품질과 ODA 발주기관의 활용 의지가 본 사업의 수요를 창출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본 교육 훈련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한국 ODA의 수준을 높이고 청년 일자리 창출, 개발컨설팅 산업의 발전, 우리 기업의 동반 진출 등에 상당히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개발 컨설팅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가격 정책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의 양을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가격을 인정하여 확실한 효과성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의 개발원조 서비스 조달가격은 아무래도 전자에서 출발하여 후자로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원조 서비스 조달 가격 정책과 관련하여, 세 가지 문제가 검토되어야 한다. 하나는 서비스 대가에 대한 적정성이고, 둘은 보수와 직결되는 투입일수 인정제도이며, 셋은 입찰에서 가격 경쟁의 운영 방식이다.
첫째, 조달가격과 관련하여, 현행 국제협력 사업 단가는 정부 예산상의 기술 용역 또는 학술연구 용역 단가를 적용하고 있다. 이의 적정성을 두 가지 기준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하나는 해외에서 다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원조 서비스가 국내 기술 용역 단가 또는 연구 용역 단가를 적용하는 것의 합리성 여부이다. 전자는 업무 환경 및 업무 성격에 있어서 후자와 다르다. 이 다른 점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검토하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유사한 서비스에 대한 다자개발은행 등 국제시장의 가격과의 비교 검토이다. 우리가 그들과 대등한 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그 대가도 일단 대등하게 하는 것이 원칙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13)
둘째, 투입일수 인정제도와 관련하여, 개인이든 기업이든 이 일을 직업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관점에서 투입일수 관련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장기 프로젝트의 핵심 투입인력을 사업 기간 장기 계약을 해 놓고 다른 일의 수행은 제한하면서 투입일수는 아주 제한적으로 한다면 이러한 일을 전업적으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14) 기업에 대해서도 이 일을 지속해서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제 경비율 및 기술료를 배려하여야 한다. 기업이 이윤이 있어야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셋째, 원조 서비스 조달에 있어서 품질과 제안가격을 함께 평가하는 것 자체는 다자개발은행(MDB)에서도 그러하니 일응 정당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성능과 사양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물자와 달리, 지적 산출물인 컨설팅 용역에서는 가격보다는 품질이 절대적인 중요성이 있음을 유의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과 사업 수주를 생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간 중소기업과 같은 기준으로 가격 경쟁을 하게 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맞지 않은 것 같다.
개발컨설팅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국내 시장에서 조달되는 우리 원조 규모는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기업이 자랄 수 있는 여건으로 불충분하다. 그래서 그 원조 규모의 안에서라도 가능한 한 시장에서 조달하는 컨설팅 서비스의 규모가 크게 되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원조 기관이 서비스를 조달하는 과정에서 공개 입찰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국내 입찰보다 국제기구에 위탁하여 수행하게 하는 경우, 기업이 아니라 개인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용역을 맡기는 경우 등이다. 전자의 경우, 우리 기업의 전문성이 미흡하니, 국제기구에 맡기는 것이다.15) 후자의 경우, 주로 단순한 서비스 조달이 그 대상이지만, 기업으로 조달하면 더욱 효과적인 과업도 있다.16) 이러한 문제에서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기르는 기회를 주는 의미에서 가능한 한 국내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개인보다는 가능한 한 기업을 고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17)
둘째, 특히 양허성차관사업 등 대규모 사업에 있어서 단순히 하드웨어에 치중하기보다는 컨설팅 부분을 가능한 한 확대하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컨설팅 부분이 제대로 수행되어야 사업의 타당성을 보다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고 사업 자체도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18)
셋째, 지금 전문 원조 기관 이외에 정부의 각 부처, 그 산하의 공공기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개발원조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 원조 전문기관과 달리 시장에서 경쟁에 의한 조달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공공재로서 특별히 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이 수행할 수밖에 없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장에서 공개 입찰에 따라 원조 서비스를 조달하여야 할 것이다.
넷째, 젊은 세대의 시장에의 접근성을 크게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인력이 개발컨설턴트를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하여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시장에서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KOICA의 경우, 현재 7년 미만의 경력은 5급으로 가장 낮은 등급을 부여받고 프로젝트에 직접 투입되는 기회도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19) 기업으로서는 이 같은 사업참여의 대가와 기회가 낮은 젊은 인력은 고용하기가 어렵다. 개인으로서도 그렇게 오랜 기간 일에의 참여 기회나 보수가 그렇게 제한된다면 그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20) 선진 공여국의 경우, 핵심 투입인력 외에는 사업수행기관(PMC, Project Management Company)의 재량에 맡겨 청년 인력들이 경력을 쌓아나갈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21)
산업이 유치한 단계에서는 시장을 보호해 주다가 어느 단계가 되면 시장을 개방하여 경쟁자들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산업발전의 패턴이다. 우리 개발컨설팅 산업이 국내 시장에서 해외 경쟁자들과 경쟁하여야 하고, 길러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 해외 시장에서 생존하고 경쟁에서 뒤지지 않아야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게 되고 앞 장에서 이야기한 기회를 우리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원조 서비스 조달가격으로는 해외의 경쟁자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해외 경쟁자들과의 경쟁은 우리 산업의 경쟁력 배양에 도움이 된다. 현재의 조달가격의 저가 정책을 유지하는 한 해외 경쟁자들의 참여는 없을 것이고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은 경쟁력 배양의 기회를 얻기 어렵게 될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정한 가격 정책으로 우리 기업이 경쟁을 통하여 경쟁을 배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본다.
원조 기관은 이러한 여건하에서 원조의 품질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제기구에 사업을 위탁하거나 소수의 사업을 대상으로 시험적으로 국제 입찰에 부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이미 앞에서 논의했고, 후자의 원조 당국이 형식적으로 국제 입찰에 붙이지만, 아직 조달가격을 그들의 국제적 가격 수준에 맞추지 못하고 있어 결국 해외 우수 기관들의 참여가 무산되고 마는 사례가 있다. 국제 입찰에 부의할 경우에는 국제적 기준의 가격 정책을 적용하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원조도 국제 경쟁일진데, 낮은 가격의 원조 서비스는 두 가지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 하나는 우리의 원조 서비스의 질이 국제적 기준에 뒤질 수밖에 없어, 그 원조가 수원국의 만족을 확보하기 어렵게 될 점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 개발컨설팅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 앞 절에서와 같이 큰 경제적 기회를 외면하게 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우리의 원조 서비스 조달가격을 단계적으로 국제시장 수준에 맞추어 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해외 전문가들의 국내 시장에의 참여 기회를 넓혀 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이 높은 경쟁력을 가져서 원조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국제시장에서의 블루오션의 기회를 열어나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 개발컨설턴트들이 속히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어 해외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개발컨설팅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성장하여 한국 경제에 전술한 바와 같은 이바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반도체, 가전제품, 조선, 철강, 이차전지,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식품 산업 등에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우리가 성공적으로 경제적 발전을 이루어 온 삶 자체를 바탕으로 한 컨설팅 비즈니스에서 그러지 못하란 법은 없다.
우선 위와 같은 전문 컨설턴트 양성 프로그램으로 길러진 우수한 우리 컨설턴트들이 국제시장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관계부처에서 운영하는 젊은 인재의 국제기구 진출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가면서, 무엇보다 국제기구에 최소한 우리가 이바지하는 만큼 우리 인력이 진출할 수 있도록 외교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진검 승부는 우리 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경쟁해 나가는 일이다. 기업이 혼자 아무런 실적을 쌓지 못한 여건에서 진출하기란 쉽지 않다. 해외 시장 정보, 입찰 관련 서류 작성 기술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해야 할 그 이상의 역할이 있다.
국제 개발원조 시장의 사업 발주처는 주로 UN 관련 기구, 다자개발은행(MDBs), 그리고 각국 정부이다. 이들 사업의 경쟁에는 상당한 정치력이 관계하기 마련이다. 국제기구의 근무자들은 자국의 컨설턴트를 돕는 입장이고, 각국 정부 또한 정치적으로 유리한 선택을 하고자 한다. 여기에 공여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이 경쟁에서 유리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지원한다.22) 그런데 우리 정부 및 공공기관들은 민간 기업들과 해외 시장에서 비즈니스로 어울리는 것은 특정 기업에 이익을 줄 수 있는 행위로서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선진 공여국들의 국제적 관행과는 분명히 다르다. 국내에서 여러 자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특정 기업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지만, 해외 시장에서 타국 기업과 경쟁하는 자국 기업을 돕는 일에서는 정부나 공공기관이 자국 기업의 수주를 위하여 고급정보의 제공, 외교적 지원, 협력에 의한 공동 진출 등 다양한 조치를 강구한다. 우리도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에 정부가 가능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V. 맺음말
개발원조는 국제사회의 책무로서 그냥 도와주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개발원조는 남을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주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다. 다만 이것이 먼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우리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점이 있을 뿐이다.
우선 개발원조의 목적은 수원국에서 원조의 개발 효과성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원조가 상대국의 개발에 큰 효과를 창출한다면, 우리와 그 나라들과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뿐더러 경제적 협력관계가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개발원조는 주로 개발과 관련되는 지식 내지는 컨설팅을 제공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자국의 개발컨설팅 산업발전에 종잣돈(seed money) 또는 교육비가 되는 것이다. 개발컨설팅 산업의 발전 수준은 원조의 효과성의 주된 요소가 되니, 원조로 인하여 개발컨설팅 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역으로 원조의 효과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고, 그 외에도 여러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게 된다.
무엇보다, 개발 컨설팅산업이 발전하게 되면, 이는 한계에 부딪힌 좋은 일자리 창출에 하나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컨설팅은 고부가가치의 노동집약적 산업으로서, 비구속화(untied)의 엄청난 규모의 국제 개발원조 시장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또한, 개발컨설팅 산업의 발전은 지식산업의 총아로서 지식산업으로의 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의 개발 컨설팅산업의 발전으로 우리 개발원조의 효과성이 높아지게 되면 개발도상국과의 관계를 깊게 하여 경제적 안보의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줄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개발컨설팅 산업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한국 개발컨설팅 산업에 대한 SWOT 분석 결과, 한국은 약점에 비하여 강점이 훨씬 크고 위협에 비하여 기회가 훨씬 많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개발에 아주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여 세계 최빈의 수원국으로서 짧은 기간에 민주 산업국가로서의 공여국이 된 거의 유일한 경험과 지적 자산을 고스란히 보유하고 있다. 이 점은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우리의 태생적 강점이다. 이와 같은 개발컨설팅의 높은 잠재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여 위와 같은 좋은 기회를 외면하고 있음은 우리의 불찰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의 개발원조는 이러한 개발컨설팅 산업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원조를 받기만 하다가 갑자기 원조를 공여하게 된 한국은 원조의 여건으로 개발시대에 탄생한 많은 공공기관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재정 사업이니 예산회계법의 틀 안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예산을 아껴야 했다. 이러한 여건에서 콘텐츠에 풍부한 공공기관과 연구 역량의 대학이 큰 역할을 감당하여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근래에는 현장에 강점을 가진 비정부기구(NGO)가 상당한 역할을 떠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전업적 개발컨설팅 기업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어 개발컨설팅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정책적 과제가 되었다.
개발컨설팅 산업을 활성화하는 기본 목표는 무엇보다 우리의 기업 또는 개인 개발컨설턴트들이 국제 개발원조 시장에서 나름대로 경쟁력을 가지고 뚜렷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며, 대학을 나오는 우수한 젊은이들이 이 시장에서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이러한 국제 개발원조 시장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의하여 앞장에서 논의한 바와 같은 여러 경제적 기회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두고자 한다.
위의 목표를 실현할 전략은 여건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추진하되, 개발컨설팅의 공급 측면 및 수요 측면을 어우르는 종합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발컨설팅 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현 상황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은 개발컨설턴트 공급 면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문가의 부족으로 국제원조시장에서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여건에서 그리고 지식산업 시대를 열어가는 의미에서 전략적으로 전문인력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는 아무래도 정부의 마중물 역할이 필요한 과업이다.
다음으로, 개발컨설턴트 공급을 늘려가면서 필요한 것이 그들의 일자리를 충분히 마련해 주는 수요 면에서의 대책이다. 원조 서비스 조달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원조 서비스가 해외에서 아주 다른 고객을 상대로 하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조달가격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시장에서 조달하는 원조 서비스 자체 또는 그중에서 컨설팅 비중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어서, 우리 개발컨설팅 산업이 국내 시장에서 해외 경쟁자들과 경쟁하여야 하고, 길러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우리 시장도 단계적으로 개방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국내 원조 시장의 정상화 조치와 아울러 이제는 우리 기업이 해외 원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 기술적 지원 등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끝으로, 이상과 같은 전략을 수행하면서 우리의 원조 인적자원, 즉 공공기관, 대학, 비정부기구(NGO), 개발컨설팅 기관 등을 종합적으로 활용하거나 서로 협력하는 전통을 마련하여야 한다. 공공기관의 콘텐츠에 대한 전문성, 대학의 연구 역량, 비정부기구의 현장 기반, 개발컨설팅 기관의 협력사업 관리 전문성 등의 각 주체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서 국제시장에서의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될 경우, 아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의 개인, 기업 등 실체가 원조서비스 조달을 위한 국제개발컨설팅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한류를 창출하여 국제사회의 개발원조 효과성에 크게 이바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의 절실한 과제인 좋은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것이며, 우리 경제의 순조로운 지식산업 기반으로의 이행에 촉매 역할을 할 것이고, 국제경제의 불확실성 증대에 대비한 우리 경제의 안보기반을 강화하게 되며, 기업의 해외 진출에 도움을 주어 경제 활력 회복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개발컨설팅 산업의 활성화는 한국 개발 협력의 효과성 제고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과제에 이바지할 수 있으므로 국가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