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Cooperation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특별기고

젠더분야 개발협력의 국제 동향 보고: 제21차 OECD DAC 성평등네트워크(Gendernet) 정례회의 참석 결과

남청수1,*
Cheongsoo Nam1,*
1한국국제협력단 젠더전문관 과장
1Manager, Development and Gender Specialist, KOICA
*Corresponding author: chsnam@koica.go.kr

© Copyright 2023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Nov 24, 2023; Accepted: Nov 27, 2023

Published Online: Nov 30, 2023

요 약

전세계 공여국의 모임인 OECD DAC(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내 성평등네트워크(Gendernet)은 글로벌 젠더 분야 개발협력 담론을 주도하는 주요 플랫폼 중 하나이다. 올해 젠더넷 회의는 ‘정책 권고’에 집중해 온 기존의 정책 제안 플랫폼으로서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개발협력 시행과의 거리를 보다 줄이는 노력들을 보여줬다. 성착취 및 학대의 종식과 같은 젠더기반폭력 논의의 변형된 접근뿐 아니라, 교차성, 복합위기, 거버넌스 등 최근 이슈들과 젠더 간의 연계를 모색하기 위한 논의들이 다루어졌다. 더불어, 젠더마커 가이드라인과 같은 기존의 젠더넷 거버넌스 도구를 각국의 사업 현장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례집 제작 계획 역시 공유되었다. 이러한 노력과 변화들을 통해 향후 우리나라의 성평등 개발협력 역시 고도화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Abstract

As a platform, the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OECD DAC) Gendernet is one of the leading platforms whereby donor agencies and observers regularly gather and share their issues and progress on gender and development. The annual meeting this year is particularly meaningful in that it has shown some indications of changing the focus and interest regarding their duties and activities. The network has displayed an image as a policy recommendation platform for a prolong period of time. However, over recent years, it has shifted its interests, at least partly, to some practical issues so as to reduce the gap between policy-level discourse and practice-level ones — expanding the traditional agenda of gender-based violence to ending sexual exploitation, abuse, and harassment with their guideline and toolkit. It also deals with emerging issues such as intersectionality, complex crises and fragility, and governance. It is expected that these kinds of efforts of change can provide some useful implications for improving Korea’s development cooperation and gender paradigm.

Keywords: 젠더넷; 성착취; 교차성; 현지화; 거버넌스; 복합위기
Keywords: Gendernet; Sexual Exploitation; Intersectionality; Localization; Governance; Complex Crisis

Ⅰ. 서론

1. OECD DAC 성평등 네트워크 회의의 구조와 의의

매년 1회 정도 세계 공여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OECD DAC) 소속의 성평등 네트워크(Gendernet, 이하 젠더넷)가 주관하는 정례회의가 개최된다. 통칭, 젠더넷으로 불리는 이 회의는 대략 30여 개국에 달하는 DAC 소속 회원국과 그보다 많은 다자기구 등 옵저버 기관 관계자가 참석하며, UN세계여성지위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CSW)와 더불어 가장 크고 대표적인 젠더분야 개발협력 관련 회의이다. 2016년 이후로는 매년 가을(10월~11월경) 개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략 전체일정이 3일 정도로 안착되고 있다. 제21차인 올해는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되었다. 이 기간동안 참석자들은 당해의 주요 젠더분야 개발협력 주제와 각 회원국들의 의견 및 현황 등을 말 그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공유하고 토론한다.

무엇보다 이 조직이 공여국의 주요 기관들이 참여하는 젠더 관련 논의기구라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개발협력의 ‘전주(錢主)’들의 모임이라는 것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 공여국 기관들 중 젠더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개발협력 업무 및 향후 방향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있는 이슈들을 공유하고 소통한다는 점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 국제개발협력의 주요 담론은 공여국의 주도로 생산·재생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들의 의지가 ‘재원’의 흐름에 중요한 동인이 되기 때문에, 글로벌 차원에서 젠더 분야의 개발협력 관련 자원의 흐름을 예상하는 데 있어 젠더넷에서의 논의 아젠다가 갖는 비중은 간과될 수 없다.

2. OECD DAC 성평등 네트워크의 아젠다 설정

분야 자체의 특성상 젠더넷의 경우, 새로운 이슈가 생기거나 기존에 논의되던 이슈가 사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많은 아젠다들이 사실상 젠더에 관한 고민이 등장하면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들을 이미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젠더넷의 경우, UN세계여성지위위원회에 비해 참가자 범위가 훨씬 좁고, 회의장도 한 곳에서만 진행된다. 세션도 크게 공개 세션과 회원국에게만 참석이 허용되는 비공개 세션으로 구분된다. 매년 세션의 주제는 젠더넷 사무국을 통해서 정해지며, 이에 따른 발표자의 섭외 역시 기본적으로 사무국의 기획에 따른다.1) 다소 폐쇄적인 운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연중 비정기적으로 정책 대화(policy dialogue), 특정 사안에 관한 회원국의 의견 조사 등으로 비교적 빈번히 소통이 이루어진다. 또한, 연례회의 이전에는 해당 년도 회의의 주제와 관련하여, 회원국들에 사전 설문 조사를 진행한다. 그 결과는 회의 기간 동안 room document라는 제목의 책자로 제공된다. 따라서, 적어도 회원국 그룹 안에서는 비교적 활발하고 안정적으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젠더넷의 경우 DAC 소속으로 어디까지나 ‘공여국’ 중심의 조직이다. 회원국 이외의 외부에 공개하기 어려운 사안들 혹은 공개할 필요가 적은 사안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 정도 개방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회의 기간 자체는 공여국(회원국), 파트너(다자기구, INGO 등) 간 공식·비공식적인 소통 측면에서는 활발하다고 할 수 있다. 긴밀한 공식적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으나, 회의 기간 동안 회원국과 파트너들 등의 참가자들 간에는 각자의 젠더 관련 프로그램 추진 기조, 정책 환경, 향후 협력 방향 논의 등이 진행된다.

한편, 젠더넷 정례회의의 주제는 대체로 3가지 범주로 구성된다. 첫째는 전통적인 젠더 이슈이다. 이를 테면, 개도국 여성의 경제적 역량 강화, 젠더기반폭력, 국제적 연대/파트너십 등에 관한 논의이다. 둘째는 좀 더 새로운 신흥 아젠다들이다. 젠더 측면에서 기후변화, 이주, 분쟁·취약성, 교차성(intersectionality), 현지화(localization), 데이터, 재원 마련(financing) 등의 주제가 최근 1~2년 사이에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주제들이다. 셋째는 젠더넷 사무국 자체의 진행 과업에 대한 경과나 결과 공유이다. 최근 2-3년 사이 젠더넷 사무국 차원에서는 비교적 큰 두 가지 주요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왔다. 하나는 <개발 파트너를 위한 DAC 가이던스>(OECD, 2022)이고, 다른 하나는 <성착취·학대·희롱(SEAH) 종식을 위한 OECD DAC 권고의 이행을 위한 툴킷>(OECD, 2023a)이다. 앞의 것은 2022년 보고서가 발행되었고, 뒤의 것은 현재 초안 상태로 회원국 간 회람이 진행되고 있다.

II. 제21차 OECD DAC 젠더넷 주요 논의 내용

1. 새로이 부상하는 아젠다에 대한 대응

올해의 경우, 젠더넷은 전통적으로 다루어지던 이슈들보다는 좀 더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이슈들을 담고 있다. 1일차에 ▲성착취·학대·희롱 종식, ▲교차성, ▲ 변혁적 변화(transformative change) 등이 다루어졌고, 2일차에는 ▲복합위기의 증가, ▲형식적(formal)·비형식적(informal) 거버넌스, 3일차에는 ▲기후변화가 이에 해당한다. 이번 기고에서는 이중 시의성이 더 높은 몇 가지 주제에 관한 논의 상황을 소개한다(한국국제협력단, 2023; OECD, 2023b).

1) 사업 현장에서 공여자에 의한 성착취 발생과 사업 이행 리스크

성착취·학대·희롱 종식(Ending Sexual Exploitation, Abuse, and Harrassment, SEAH)은 개발협력현장에서 특히 서비스 공급자측에 의해 이루어지는 성비위에 대한 것을 다룬다. 개발협력분야에서는 공급자측2)과 수혜자측 간의 관계를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인식하고, 둘 간의 사적 관계를 엄격히 금지한다. 이러한 논의가 국제적 아젠다로 본격 등장하게 된 계기는 옥스팜(Oxfam) 소속의 직원들이 아이티에서 활동하며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성매수나 성폭행 등을 자행했다는 사실이 2018년 초 보도를 통해서 알려지면서 부터이다. 기존에 UN 평화유지군 등으로 파견된 군인들에 의해 주둔국 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가 있다. 그러나, 세계적 구호기구인 옥스팜의 직원들에 의해 이러한 일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개발협력계, 그리고 ‘개발협력 분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영국 정부는 상당히 충격을 받게 되었다. 더군다나, 이러한 일들이 해당 사건뿐 아니라, 비교적 오랜 기간 공공연한 비밀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추가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개발협력 현장에서 성착취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대두되었다.

2018년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한 OECD DAC 젠더넷 회원국은 성착취·학대·희롱의 예방(preventing SEAH)를 위한 협의 그룹(reference group)을 구성하여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각국에 SEAH 이슈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하는 권고안(the Recommendation on Ending Sexual Exploitation, Abuse, and Harassment in Development Co-operation and Humanitarian Assistance: OECD, 2019)이 작성되었고, 이는 2019년 7월 DAC 회원국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현재 젠더넷은 협의그룹과의 협조를 통해 해당 권고안이 각국 정부를 통해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이행 툴킷을 작성 중에 있다. 여기에는 ▲정책, 전문가 행동 기준, 조직 변화, 리더십, ▲생존자중심적 대응 및 지원 기제, ▲신고 및 대응 체계와 절차, ▲훈련, 인식제고, ▲국제적 조정, ▲모니터링, 평가 및 환류 등의 6가지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한 예로, 정책 및 조직변화, 리더십 측면에서는 조직 문화의 변화를 위한 핵심 활동들, 내부고발자에 대한 안전 장치 마련, 의사결정자의 개입 등과 관련한 행동 지침과 참고 사항 등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젠더넷은 이 사안을 개발협력 프로그램의 관리 위험요소(management risk)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2019년 발표된 권고안은 정부 차원에서의 정책 권고안으로서 비교적 상위 레벨의 포괄적 지침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이번에 준비 중인 툴킷은 실제로 시행이 되어야 하는 행동 수준에서의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는 차이를 갖고 있다. 작년과 달리 관리적 측면에서 SEAH 사안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협의 그룹의 제언들에 기반해 이러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 판단된다.

참가국들은 의견 개진 과정에서 특히 공여국 집단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이러한 툴킷에 파트너들에게 미칠 영향력이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명확한 기준과 체계, 절차, 인식개선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을 경우, 발생한 일탈행위로 인한 수혜자들의 동요와 피해는 물론이고, 파트너들의 활동에 혼란과 위축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이는 모두 적절히 대응되지 않으면 사업 목적 달성에 위험요소로 작동할 것이다. 더불어, 여러 기관들의 상이한 의견을 조율하고, 자원을 동원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핵심 행위자의 조정능력 확보 역시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SEAH 논의의 경우, 기존의 젠더기반폭력, 직장 내 성비위 및 성폭력 대응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대상이 현지인인 경우가 주라는 점에 있어서 기존보다 더 많은 제도적, 행위자적 자원의 동원과 조정이 요구된다. 옥스팜의 사례에서와 같이, 국제 개발협력 활동 종사자들의 경우, 국제적 이동, 다른 기관으로의 이동이 잦아, 국제적인 협조가 없으면 효과적인 추적과 제재가 어렵다. 또한, 주 피해자가 현지인이라는 점에서 공여국과 협력대상국의 국내법, 국제법 등 간의 조정과 적용이 요구되는 등 많은 자원이 소요된다.

2) 성평등 개발협력의 영역 확대를 위한 열쇠, 교차성

젠더넷에서 교차성(intersectionality) 논의 자체가 부상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3) 하지만, 개발협력의 통합적인 성격, 기후 및 분쟁으로 인한 재난·이주 등 횡단적 이슈의 발생은 복합적 위기에 대한 대응 요구를 증가시켰다. 소위 범분야 중 대표적 분야로서 성평등은 이러한 복합적 접근의 흐름에 당연하게도 호응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의 교차성 논의는 흑인 여성이 겪는 이중적 차별과 같은 인종적 권력관계와 젠더 간의 중첩 지점에 대한 이해 쪽에 기반을 두고 있다. 반면에, 젠더넷에서 다루는 교차성은 이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내용인데, 빈곤, 건강, 기후환경, 교육, 경제, 과학기술/디지털, 성소수자, 장애 등 개발협력에서 바라보는 여러 다양한 이슈에서 젠더 요소의 접목으로 바라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이론적으로는 다소 명료함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시행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개발협력 기관들의 입장에서는 유용하다.

이번 젠더넷에서 다루어진 교차성 논의는 개념과 측정 등 비교적 원론적인 부분에 좀 더 집중되었던 작년에 비해, 좀 더 실제적인 사업 이행 여건 측면에서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를 테면, 사업 이행의 측면에서 볼 때, 교차성 접근의 적용은 더 많은 이해관계자 간의 조정, 더 다양한 자원의 분배 등 추가적인 비용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다양하고 복합적인 주제를 다루는 투입을 고려할 경우, 이에 필요한 전문인력 역시 추가될 필요가 있다. 젠더 관점이 포함될 경우, 물리적 개입뿐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의 고려가 요구되는데, 이는 지역의 사회문화적 특성에 대한 고려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대응책은 현지 엔지오와 같은 파트너와의 협업이다. 결국 실무적으로 교차성의 적용이 이루어질 경우, 필연적으로 현지화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다시 현지화 논의에서 주요 쟁점이 되는 현지 기관의 자율성 확보, 이들에 대한 효과적 재원의 분배 논의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현재는 국제사회에서 이에 대한 준비가 미비한 바, 현지에서 적절한 파트너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대응 측면에서의 고민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파트너 이슈뿐 아니라, 주제 측면에서의 이슈 역시 존재한다. 젠더 측면에서 기존 개발협력이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여성과 남성관의 권력 관계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교차성 접근을 고려할 경우, 계급(빈곤), 인종, 장애, 연령(아동, 노인), 종교, 성소수자 이슈 등 균열(cleavage) 지점이 다양화된다. 이중 상당 이슈들은 가용 자원의 한계나 국내 정치 환경 등의 이유로 현재 개발협력의 젠더 논의에서 매우 소수의 공여국에서만 논의되거나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다.

3) 글로벌 복합위기 맥락에서 성평등 개발협력 거버넌스 위기

분쟁 및 재난 등으로 인한 복합적인 글로벌 취약성이 증가함에 따라 개발협력에서의 도전적 과제가 증가하고 있다. 개발협력 대상에 해당하는 다수의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약화된 상태에 있다. 이로 인해, 사업의 추진, 국내적 취약상황에 대한 개입 차원의 정치적 대화나 정책적 대화 자체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 다수 존재한다. 성평등의 경우, 이러한 상황에서 추진이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접근이 어려운 주제 중 하나로서 사업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여주체 측에서 협력대상국에 대한 협상력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젠더기반폭력과 같은 특정 이슈, 교차성, 현지화 등의 심층적 이슈의 적용에 더 큰 장애로 작동하게 된다. 취약국에 대한 지원이 현재 근본적 원인들에 대한 접근을 다루기 보다는 인도적 지원이나, 이를 테면 평화유지군과 같은 군사적 행위자들에 의한 개입에 상당 부분 의존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젠더넷에서는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 글로벌 복합위기로 인한 취약 상황에 대해 기존의 형식적(formal) 거버넌스와 더불어 비형식적(informal) 거버넌스의 필요성에 관해 논의가 진행되었다. 많은 국가에서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개혁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성평등과 관련해서는 국내의 행위자들의 활동에만 정통성(legitimacy)를 부여하고 있다. 즉, 자국 내의 여성단체나 아니면 의회 혹은 공공기관 등과의 협업 만이 허용되고 있어, 기본적으로 해당 정부가 허용하는 거버넌스 내의 담론 안으로 활동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만일 해당 국가의 정부가 성평등과 여성의 역량강화 의제에 소극적일 경우, 젠더와 관련된 개발협력 개입은 매우 좁은 범위로 한정된다. 일례로, 동남아 일부 국가들과 같이 여성부가 설치되지 않은 대신, 그 역할을 당에 소속된 여성연맹이 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사업을 진행할 때, 이 조직의 활동이나 의제설정 범위가 인간 안보(human security) 차원의 개인 인권보다는 국가 안보(national security) 정부의 정책 기조, 그리고 전통적인 여성상의 강화와 같은 수준으로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취약한 거버넌스 여건은 기왕에 이루어진 정책이나 법제의 변화가 지속성 측면에서 취약하여 다시 예전 상태로 회귀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한다. 이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발흥하고 있는 성평등과 같은 소위 ‘진보적 가치’에 대한 백래쉬 환경에서 더욱 큰 함의를 갖는다. 공적 영역으로 나온 가치가 공적인 보호를 받지 못할 경우, 이는 다시 사적 영역으로 회귀하게 된다. 가정 폭력과 성폭력,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 등을 포함한 젠더기반폭력, 성평등 달성을 위한 제도적 변화, 여성의 무급가사돌봄노동에 대한 경제적 가치 인정 등 SDGs 시대에 새로이 공론화되었던 이슈들은 무력화되거나 아니면 폐지 위기에 놓인다. 유럽의 폴란드, 남미의 브라질 등의 사례는 대표적이다.4)

III. 결론

OECD DAC 젠더넷은 국제사회, 특히 공여국들 간의 성평등 개발협력에 관한 글로벌 담론을 이끄는 주요 플랫폼 중 하나로 중요성이 크다.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 따라 다루어지는 아젠다 역시 여성의 임파워먼트, 경제적 역량강화, 젠더기반폭력 등 전통적인 논의들에서 보다 최근 부상하는 이슈들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물론, 성착취·학대·희롱의 종식 논의처럼 기존의 젠더기반폭력 이슈가 다른 시각에서 접근되는 경우도 있으나, 기후변화, 분쟁 및 취약 등 사안의 복합성 증대와 더불어 교차성, 현지화, 거버넌스 변화 등으로 타 분야와의 연계를 모색하는 변화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더불어, 정책 기관으로서 기존에 다루어지던 논의가 다소 추상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던 한계에서도 벗어나는 조짐 역시 보이고 있다. 2016년 젠더넷은 기존에 활용하던 젠더마커 가이드라인을 체크리스트를 수반한 보다 구체적이고 강화된 방식으로 개정한 바 있다. 이 역시 실무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별도의 가공이 필요한 수준의 자료였다. 하지만, 금번 회의를 통해 젠더넷 사무국은 해당 자료의 활용 활성화를 위한 사례집(casebook) 제작 계획을 발표하였고, 내년 상반기 관련된 사례와 정보들을 회원국들로부터 수집하여 하반기 발간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DAC의 사무국이 기존에 ‘권고안 생산 기구’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 복합적 위기 환경에 보다 구체적인 대응을 하는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향후, UNWomen 등 다자기구, 선사례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가는 양자기구 및 국제 시민사회조직(Civil Society Organization, CSO)들 등과의 협업을 강화해 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글로벌 사회 젠더 개발협력 담론에 대한 기여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나라의 젠더 분야 개발협력의 고도화에 필요한 함의 역시 찾아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Notes

CSW의 경우는 세계의 양자·다자기구, 관계부처(우리나라의 경우 여성가족부) 및 관련 공공기관, 각종 여성 관련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며, 기간도 2주간 진행되는 거대한 행사이다. 그렇다보니, 매년 핵심 주제(priority theme) 을 지정하고, 이외의 주제들은 기타 부대 행사들을 통해 다양한 세션을 다룬다.

이 범위에는 기본적으로 공여 공급자-공여 수혜자 간의 구도 내에서, 공여국 공여기관, 국제기구 및 국제NGO 종 사자 등과 현지인 수혜자, 공여 기관 내 상사-현지 직원 등이 포괄된다. 그리고, 그 인적 범위 역시 본부 대표에 서부터 구호 현장 일선에 이르기까지 넓게 정해져 있다. 여기에는, 공급자측은 수혜자측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 는 자원을 보유하므로 수혜자측의 의사결정 및 행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power)를 갖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이러한 위치에서 수혜자에 대한 사적 요구는 착취나 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는 가정을 포 함하고 있다. 이런 전제에서 개발협력 서비스 공급자와 수혜자 간 성적 관계는 이유를 막론하고 엄격히 금지된다.

필자가 처음 젠더넷 회의에 참석했던 2016년부터 코로나 발발로 오프라인 회의가 중단되기 전인 2019년까지 교 차성 개념은 회의 아젠다에 등장하지 않았다.

회의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스웨덴은 최근 극우정권 출범 이후 2015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채택했던 ‘페 미니스트 외교 정책(Feminist Foreign Policy)’을 폐기하였다.

참고문헌

1.

한국국제협력단. (2023). 제21차 OECD DAC Gendernet 회의록. 비공개자료.

2.

OECD. (2022). Gender equality and the empowerment of women and girls: DAC guidance for development partners. Paris: OECD.

3.

OECD. (2023a). Draft toolkit to support implementation of the OECD DAC recommendation on ending sexual exploitation abuse and harassment. Unclassfied Draft.

4.

OECD DAC. (2023b). Draft Agenda: Plenary Meeting of Gendernet: 21st Meeting of the OECD DAC Network on Gender Equality (Gendernet). Unclassfied Dra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