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최근 현지주도개발(Locally Led Development, LLD) 의제에 관한 논의가 OECD(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개발원조위원회(Development Assistance Committee, DAC) 회원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협력국 자율성을 강조하며, 현지 행위자(local actors)가 발전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그들의 필요와 우선순위에 맞춘 국제개발협력을 추진하자는 담론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으나, 실제 공여국들의 개발협력 추진 과정에서의 진전은 충분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최대 공여국인 미국 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USAID)의 Power 처장이 2021년 11월 ‘현지화(localization) 비전’을 발표하면서 동 의제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되고, 이후 2022년 12월 개최된 효과적 개발협력을 위한 파트너십(Global Partnership for Effective Development Co-operation, GPEDC) 고위급 회의를 계기로 15개 공여국이 서명한 ‘현지주도개발 지지 공여국 성명(Donor Statement on Supporting Locally Led Development)’이 발표되면서 DAC 내에서의 관심과 논의가 더욱 확산되었으며, 이는 2023∼2024년간 추진된 현지주도개발 동료학습(peer learning on LLD)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동 논문에서는 DAC의 현지주도개발 동료학습을 중심으로 관련 논의 동향을 살펴보고 한국 ODA(Official Development Cooperation)에 대한 시사점을 간략히 도출하여 보고자 한다. 동 논문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Ⅱ장에서 현지주도개발 의제의 대두와 확산을 이론적, 실천적 배경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Ⅲ장에서는 현지주도개발 동료학습을 중심으로 한 DAC에서의 논의 동향을 살펴본 후, Ⅳ장에서 한국 ODA에의 시사점을 제시할 것이다.
Ⅱ. 현지주도개발 의제의 대두와 확산
현지주도개발 의제의 이론적 배경으로는 협력국 주민들이 발전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참여하며 권력관계를 균등화하여야 한다는 규범적(normative) 당위성을 강조하는 흐름과 효과성과 효율성 등 도구적(instrumental)이고 실용적(practical)인 측면을 강조하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Vij, 2023).
먼저 규범적 측면을 강조하는 이론적 배경은 대표적으로 참여적 개발(participatory development)과 개발의 탈식민화(decolonization) 논의를 들 수 있다. 참여적 개발의 주창자라고 할 수 있는 Chambers(1983)는 개발의 주체로서 현지 주민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외부 원조가 아닌 현지 자원과 역량을 활용하는 접근이 장기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으며, Cornwall(2002)은 형식적 참여를 넘어선 진정한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Escobar(1995)는 개발이 과거 식민주의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진행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개발 과정에서 수원국 자율성을 보장하고, 수원국이 외부 개입 없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Mawdsley(2012)는 개발의 탈식민화를 촉진하기 위해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수원국의 자주적 발전을 위한 제도적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발 협력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구적, 실용적 측면에서 현지주도개발을 지지하는 이론적 근거는 OECD DAC을 중심으로 한 원조 및 개발 효과성에 대한 논의와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원조효과성 파리선언(Paris Declaration on Aid Effectiveness)에서 강조된 주인의식(ownership)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원칙, 2011년 효과적 개발협력을 위한 부산선언(Busan Partnership for Effective Development Co-operation)과 이의 후속으로 창설된 GPEDC의 포용적 파트너십(inclusive partnerships) 원칙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Vij, 2023).
한편, 현지 단체의 활용이 비용 효율적인지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많지 않지만, 최근 The Share Trust & Warande Advisory Centre(2022)의 연구는 국제기구, 국제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 등을 대신해 현지 단체에 직접 자금을 지원할 경우, 인건비와 관리비 절감 등을 통해 평균 32%의 비용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도구적 측면의 현지주도개발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여전히 서구의 식민지적 관점을 반영하며, 싸고 저렴한 현지인력을 활용하려는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Ndlovu-Gatsheni, 2020).
현지주도개발을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구체적인 국제적 공약은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 먼저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현지 행위자들이 현지 상황에 대한 더 나은 지식을 갖고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인도적 지원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러한 담론은 2016년 세계인도지원총회(World Humanitarian Summit)에서 발표된 인도적 대합의(Grand Bargain)에서, 전체 인도적 자금의 최소 25%를 현지 단체들에게 가능한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IASC, 2016). 이후, 2021년 ‘Grand Bargain 2.0’ 프레임워크는 현지화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면서, 핵심 자금지원(core funding)을 포함한 예측가능하고 유연하며 장기적인 양질의 자금(quality funding) 지원목표를 구체화하고, 자금 배분뿐 아니라 현지주도적 의사결정 및 사업관리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접근법을 지향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은 ‘2023년 너머의 Grand Bargain(Grand Bargain beyond 2023)’ 프레임워크에서도 지속된다(IASC, 2021, 2023).
하지만, 이러한 담론과 국제적 공약의 활성화와 달리, 인도적 지원에서의 현지화 이행성과는 상대적으로 저조하다. Metcalfe-Hough et al.(2023)의 Grand Bargain에 대한 독립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체코, 프랑스, 슬로베니아, 스페인 등 4개 공여국만이 25%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보고하였고,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의 재원추적시스템(Financial Tracking Service, FTS)1)에 따른 현지 및 국가 행위자에 대한 지원비중은 2020년 3.4%에서 2021년 2.3%, 2022년 1.8%로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협력분야에서 현지주도개발 논의가 핵심 아젠다로 부상하게 되는 계기는 팬데믹, 기후변화, 지정학적 위기 확대 등으로 대변되는 소위 글로벌 복합위기를 가장 큰 배경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Vij, 2023). 코로나19로 인한 인력과 물자의 이동제한은 현지에 대한 의존성 증대를 가져왔고, 제약된 상황 하에서 현지 인력과 전문성을 활용한 효과적인 개발협력 추진 논의로 이어졌다. 아울러, 기후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저·중소득국들이 기후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상황 가운데에서, 현지 수요와 우선순위를 반영한 적응(adaptation)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었고, 이는 2021년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회의(COP26)에서의 현지주도적응(Locally Led Adaptation, LLA) 원칙 논의로 이어지게 된다(World Resources Institute, n.d.).
한편, 지정학적 위기 확대와 민주주의 퇴행 및 권위주의 확산 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제약된 환경에 처한 국가가 많아지게 됨에 따라, 기존의 방식으로 협력국 정부와 협력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 문제가 노정되고, 이와 동시에, 협력국 정부에 대한 예산지원을 포함한 공여국 중심의 하향식(top-down) 원조의 효과성에 대한 부정적 사례 등이 나타나면서, 현지 커뮤니티 및 시민사회단체(CSO)에 대한 직접 지원을 확산하자는 논의가 점차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DAC은 2021년에 ‘개발협력과 인도적지원에서의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권고안’2)을 발표하면서, 협력국 시민 공간(civic space)의 보호, 현지 CSO에 대한 직접 자금지원, 균등한 파트너십 구축 등을 권고에 포함하고 있다(OECD, 2021).
오랜 기간 이론적, 실천적 논의를 거쳐 발전하여 온 현지주도개발 담론이 DAC 내 핵심 의제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21년 미국 USAID의 ‘현지화 비전’ 발표와 2022년 GPEDC 고위급 회의시 발표된 ‘현지주도개발 지지 공여국 성명’이다.
미국 USAID Power 처장은 2021년 11월 현지화 비전(localization vision)을 발표하고, 이를 기관 전략과 사업에 내재화할 뿐 아니라, 국제적 의제화하려는 노력을 강화하여 왔다(USAID, 2022b). 동 현지화 비전의 이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기관 위험성향진술서와 조달 및 지원 전략을 개정하고, 현지역량강화 정책을 수립하며, USAID 사업참여 절차를 간소화하고 현지 행위자들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플랫폼을 개설할 뿐 아니라, 현지화 추진 가이던스 제작 및 직원역량 강화를 추진하는 등 기관 전방위적으로 포괄적인 접근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3년부터 매년 USAID의 현지화 이행 모니터링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USAID, 2024a).
USAID의 현지화는 크게 2가지의 목표로 요약되는데, 첫째는 2025년까지 기관 프로그램 예산의 25%를 현지 파트너에 지원하는 것이며, 둘째는 2030년까지 사업 프로그래밍(기획, 실행, 평가)의 50% 이상을 현지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것이다(USAID, 2022b). 이러한 USAID의 두 가지 목표는 현지로의 ‘자금(funding)’과 ‘권한(power)’의 배분이 현지주도개발의 핵심적인 두 가지 축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중 첫 번째 25%의 목표측정 지표에서 현지 파트너의 범위에 협력국 정부에 대한 직접 지원(G2G)은 제외되는데(USAID, 2023a), 이는 USAID 현지화가 협력국 정부보다는 시민사회단체(CSO), 민간 부문(private sector)에 대한 직접 지원에 더욱 방점을 둔 정책이라는 점과, 권위주의 확산 가운데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외교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함의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3)
미국은 현지화 비전 발표 이후, 이를 국제 의제화하면서 공여국들이 동의하는 현지화 원칙 수립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2022년 12월 제3차 GPEDC 고위급회의에서 미국과 노르웨이 주도로 ‘현지주도개발 지지 공여국 성명(Donor Statement on Locally Led Development)’을 발표하게 된다. 동 공여국 성명은 ① 권한 이전 및 공유를 통한 현지 행위자의 주인의식 확보와 균등한 참여, ② 현지 행위자에 대한 양질의 자금을 가능한 직접 지원하기 위해 노력, ③ 현지주도개발의 공개적 옹호라는 세 가지 내용을 그 골자로 하고 있는데(USAID, n.d.), USAID의 현지화 목표와 마찬가지로 권한과 자금의 이전을 핵심적으로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동 성명은 발표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한 15개 공여국(기관)4)이 참여하였으며, 2024 년 9월 현재 참여자는 21개국(기관), 26개 자선단체로 확대되었다(USAID, n.d.).
Ⅲ. DAC의 현지주도개발 논의 동향 - 동료학습을 중심으로
2022년말 GPEDC 고위급회의에서의 ‘현지주도개발 지지 공여국 성명’ 발표 이후, 2023년초 DAC은 현지주도개발 동료학습(peer learning on LLD) 추진을 결정하였다. 이는 현지 행위자의 범위에 대한 합의된 정의가 없고,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회원국들의 이해도 및 적용사례가 매우 다양한 상황 가운데에서, 지침(guidance)이나 권고(recommendation)와 같은 규범적인 작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실제 회원국들의 사례를 학습하며, 현지주도개발을 구조화 하고 촉진요인들을 도출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전략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동료학습은 2023년 7월에서 2024년 6월까지 총 12개월간 진행되었으며, 동 작업 추진을 위한 자금은 미국, 캐나다, 헝가리가 제공하였다(OECD, 2024g). 데이터 수집과 분석은 OECD 개발협력국 동료검토팀이 OECD내 타부서 및 국제 컨설턴트들5)과 협업하여 추진하였으며, 미국, 캐나다, 아일랜드, 스위스 등 회원국과 시민사회단체, 학계 등이 자문위원회(sounding board)를 구성하고, DAC 정례회의 및 산하 네트워크 회의, 비공식 세미나 등 다양한 계기를 활용하여 회원국들의 의견을 반영하였다.
동 동료학습은 크게 ① 현지주도개발 프레임워크 구축, ② DAC 회원국 사례분석(캐나다, 아일랜드, 스위스), ③ 협력국 사례분석(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네팔), ④ 주제별 심층분석, ⑤ 학습 및 컨설팅 행사의 다섯 가지 기둥으로 추진되었다. 이중, 주제별 심층분석은 ① 위험관리, ② 다자기구의 역할, ③ 현지 지식과 역량에 대한 가치 인정, ④ 현지 이해관계자의 책무성, ⑤ 정치적 제약상황에서의 현지주도개발, ⑥ 현지주도개발 진전에 대한 측정의 6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이루어졌다. 동료학습의 산출물로는 현지주도개발 프레임워크 백서, DAC 회원국 3개국에 대한 사례분석 보고서, 주제별 연구보고서 4건6)이 발간되었고, 동료학습 결과를 종합하는 ‘효과적인 현지주도 개발협력을 위한 여정’ 보고서가 2024년 9월 최종적으로 발간되었다.
이에 아래에서는 현지주도개발 프레임워크를 구성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관련 용어의 정의에 대해 먼저 검토하고, 세부 주제별 논의 동향을 살펴본 후, 향후 DAC의 논의가 어떻게 추진될지에 대해 간략히 전망하여 보고자 한다.
현지화와 현지주도개발의 의미, 그리고 현지 행위자의 범위에 대해 국제적으로 합의된 이해는 존재하지 않으며, 미국, 캐나다, 호주, 국제 CSO 등은 각 기관별로 다양한 정의를 활용하고 있다(<표 1>). 이러한 가운데에서 OECD는 각 국가 및 기구들의 정의와 관련 논의를 종합하며 현지주도개발 및 관련 용어를 <표 1>과 같이 정의하였는데, 이는 확정적 정의가 아닌, 동료학습 과정에서의 실무적 정의(working definition)로서 제시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OECD, 2023b).
용어 | 정의 |
---|---|
현지주도개발 | 다양한 현지 행위자들이 개발정책 및 프로그램 여러 차원(프레이밍, 기획, 이행, 학습, 책무성)에서 주체성(agency)을 실현하는 지속적인 발전 과정 |
현지주도 개발협력 | 프레이밍, 기획, 이행(재원 조달 포함), 책무성과 학습의 영역에서 다양한 현지 행위자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촉진하여, 현지 주도 인도적 지원와 개발원조를 지원하는 개발협력 |
현지 행위자 | 현지 법률의 적용을 받으며 현지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7) |
현지화 | 현지주도 개발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DAC 회원국 및 중개 파트너의 정책, 제도, 시스템, 사업 관행의 변화 과정 |
출처: OECD(2023b, 2024g), 저자 재구성.
현지 행위자(local actors)의 범위는 개인, 시민단체, 기업뿐 아니라, 협력국의 중앙 및 지방정부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정의되었다. 국제 CSO의 현지 지부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하나, 현지에 소재하는 단체들의 다양한 법적·사실적 상태를 고려할 때 일부 모호성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 아울러, 현지주도 개발협력(locally led development cooperation)은 개발협력 전 과정에서 현지 행위자의 주체성(agency)을 강조하며 목적 중심으로 정의되었고, 현지화(localization)는 이러한 현지주도 개발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변화의 과정으로 정의되었다.
현지주도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세부 주제별 논의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위험관리 체계’, ‘현지 지식과 역량의 가치 인정과 공유’, ‘자금지원 메커니즘’, ‘현지주도개발 진전의 측정’이라는 4가지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다루고자 한다. 먼저 ‘위험관리’와 ‘역량’에 대한 논의를 다루는 것은 현지주도개발을 반대하는 주요 논거로 현지 행위자에 대한 수탁위험 및 역량 부족이 자주 언급되며, 이러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고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는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는 자금지원 메커니즘을 다루고자 하는데, 이는 개발협력 자금 지원채널과 운용에 대한 통제권이 개발협력 이행체계 내에서 현지의 주체성(agency)을 발현하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진전에 대한 측정에 대한 논의를 다루는 것은 현지주도개발이 수사(rhetoric)를 넘어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구체적 목표를 수립하고 측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주제들은 독립적이기보다는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논의의 편의를 위해 구분한 것임을 밝혀두고자 한다.
공여국의 현 위험관리 체계는 현지주도 개발협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공여국들의 지나친 위험 회피 성향, 현지 기준과 관행보다 공여국의 일방적인 기준에 맞춘 실사 조건(due diligence)과 과도한 통제 기제, 현지주도개발의 위험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은 현지 행위자들의 개발협력 과정에의 참여를 제한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OECD, 2023d).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DAC은 현지주도개발 동료학습 초기부터 위험관리 체계에 대한 분석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였다. 2023년 7월 회원국 대상 세미나를 개최하고, 11월 ‘위험관리와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아래에서는 동 보고서(OECD, 2023d)에서의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공여국 위험관리 시스템의 개선 논의를 살펴본다.
현재의 공여국 위험관리 체계는 회계적 관점을 중심으로 한 수탁(fiduciary) 위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동 위험을 최소화하고 회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지속가능성과 같은 장기적 개발성과와 영향력에 대한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은 크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현지주도개발의 촉진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위험회피가 아닌 파급 영향에 초점을 맞추어 일부 위험을 감수하도록 공여국의 위험관리 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합금융(blended financing)과 같은 민간재원동원 분야에서는 위험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는 민간의 위험을 공적으로 보증함으로서 개발관점의 추가성(additionality)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지주도개발이 갖는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정 부분의 수탁위험을 감수하는 체계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 USAID는 2022년 기관 위험성향진술서(risk appetite statement)를 개정하면서, “현지주도개발 접근법을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회’로서 우선시한다고 밝히며, 동 접근법이 단기적 성과를 희생하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파급 영향에 초점을 맞추는 위험관리 체계 개선의 예라고 할 수 있다(USAID, 2022c).
파급 영향에 초점을 맞추는 위험관리 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직원들이 현지 상황에 적응하면서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고, 현장에 대한 충분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부패 등 수탁위험이 실현되었을 때, 무관용 원칙보다는 보다 비례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으로의 개선이 필요하다. 일부 대출이 상환되지 않는다고 혼합금융을 중단하지 않듯이, 현지 행위자와의 파트너십도 특정 위험이 실현되었다고 무조건적으로 중단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실사 조건(due diligence)의 개선도 중요하다. 지나치게 복잡한 실사 규정의 적용, 공여국 및 국제 중개자들 간의 상이한 보고양식과 체계 등은 현지 행위자들의 불필요한 행정부담을 증가시키고, 현지 맥락에 부합하게 대응할 자율성과 유연성을 약화시킨다. 현지 맥락을 고려하며 실사 규정을 간소화하고, 파트너십의 목적과 파트너 역량에 따라, 실사 조건을 맞춤형으로 조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공여국 또는 중개자들 간에 협력과 조화(harmonization)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한 기관의 실사 정보가 타 기관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예시로서, 변화헌장(Charter for Change(C4C))에 서명한 7개 국제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는 공동으로, 특정 기관의 실사를 통과한 것이 여권과 같이 타기관의 실사에 활용될 수 있는 실사여권도구(Due Diligence Passporting Tool)를 2023년 개발한 바 있으며(Humentum, 2023), 아일랜드는 동 도구를 적용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추후 DAC 시민사회 실무공동체에서 공유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현지주도개발의 위험성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한데, 특히 원조기관 내부뿐 아니라, 자국내 이해관계자들과 소통을 통해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제개발협력은 필연적으로 위험 감수를 수반하는 것이며, 국제 파트너들도 수탁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 현지 행위자 배제시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험이 높아진다는 점 등을 자국 내 이해관계자들, 특히 원조기관을 감사하고 통제하는 기관들과 공유하며, 인식 개선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력국 수혜자 및 현지 행위자들에 대한 역량개발(capacity development)은 국제개발협력에서 오래된 논의의 주제이다. 이러한 역량개발에 대한 논의는 개인적 차원의 지식과 기술의 향상, 조직의 역량 향상, 그리고 개인과 조직의 역량개발을 가능하게 만드는 법적, 정책적 체계 구축을 위한 담론과 이를 지원하는 개발협력 사업들에 대한 논의로 구성되어 왔다(OECD, 2024h).
역량개발 담론은 ‘지식생산자’인 선진국이 생산한 지식과 기술을 ‘지식소비자’인 현지 행위자들에게 전수하며, 소위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개발협력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담론 가운데 내재된 ‘현지 행위자들이 스스로의 발전을 주도할 지식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은 현지주도개발의 반대 논거이자 장애요인으로 언급되며, 현지 행위자들의 참여를 공동 의제 설정 또는 공동 프로그램 기획이 아닌, 이행체계에서의 수탁에 한정시키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역량개발은 중요하지만, 현지의 맥락과 수요, 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향적인 역량의 전수는 개발성과를 보장할 수 없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원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준 대상이, 관절병으로 인해 낚시를 갈 수 없는 형편이거나, 물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거나, 빈부격차로 인해서 조그만 어선으로 낚시를 나가도 대형 어선을 지닌 자본가가 이미 쌍끌이 그물로 물고기를 독식해 버렸다면, 물고기 잡는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Karlan & Appel, 2011). 또한, 모든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 어장이 고갈된다면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기도 한다.
개발협력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진정한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일방향적 역량개발의 담론을 넘어서서, 현지의 지식과 전문성, 역량의 가치를 인정하고, 권력의 동학을 재설정하며 현지 우선순위를 중심에 두고 쌍방향의 역량 공유를 증진하는 관점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OECD, 2024h). 이러한 관점에서 OECD(2024h)는 DAC 회원국들의 사례들을 탐색하며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는 현지 지식과 역량의 가치 인정과 공유를 위해 아래의 사항들을 제언하고 있다.
먼저 현지 지식과 전문성을 존중하고 가치를 인정하며 개발협력 정책과 프로그래밍에 통합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현지주도적응(LLA) 원칙이라든지, 뉴질랜드의 개발협력 정책수립시 마오리족의 관점을 통합하여 반영한 것은 이러한 관점을 적용한 우수 사례로 제시되고 있다.
둘째로, 총체적이고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맞춤형 역량 공유를 촉진하는 것이다. 공여국에 의해 하향적으로 부과되는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현지의 수요와 지식에 기반한 관점으로 전환하고, 분절적이고 중복적으로 추진되는 기존의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속 가능한 개발성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데, 평가 프레임워크 등 책무성 메커니즘의 설계에 있어서 현지 지식과 역량을 통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현지의 역량 공유 강화를 생태계적 관점에서 지원하기 위해, 현지 단체에 자금 지원시, 직원들의 역량에 대한 투자가 가능하도록 충분한 간접비를 인정하며,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현지 주도 역량 공유를 원거리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현지 행위자와 국제 행위자 간의 협력 네트워크를 확산하며, 현지 중개자들을 활용하면서 권력관계를 보다 균등화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현지로 이전할 수 있다. 아울러, 현지 행위자들이 역량강화 및 공유 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직접 자금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 USAID는 2022년 현지 역량강화정책(Local Capacity Strengthening(LCS) Policy)를 수립하여, 현지역량강화를 위한 효과적인 프로그래밍과 균등한 파트너십을 위한 7개의 원칙8)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연례 모니터링을 추진하고 있는데(USAID, 2022a), 이는 총체적 관점에서 역량 공유를 촉진하고, 현지주도 역량 공유를 지원하는 접근법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OECD는 동료학습을 통해, 역량개발 담론을 넘어선 ‘현지 지식과 역량에 대한 가치 인정과 공유’라는 근본적 관점 변화를 제언하지만, 실제 제시된 회원국들의 관련 사례들 중 다수는 여전히 역량 강화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현지주도개발의 장애요인으로 언급되는 역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적 접근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다. 아울러, DAC 회원국들 중 여전히 역량 부족과 수탁 위험, 그리고 현지 단체의 정치화와 대표성 문제 등을 언급하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국가들도 많다.
양질의 자금을 현지 행위자에게 직접 지원하고 운용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은 국제개발협력 이행체계 내에서 현지 행위자들이 실질적인 주체성(agency)을 발현하기 위한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지 행위자들에게 양질의 자금을 직접 제공하고자 하는 국제적 공약은 2016년 ‘인도적 대합의(Grand bargain)’에서의 ‘현지 행위자에 대한 25%의 자금 직접 지원 목표’, 2022년 ‘현지주도개발 지지 공여국 성명’에서의 ‘양질의 자금 직접 전달 노력’ 등에 대표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실제 OECD(2024g)의 통계를 보면, 양자 ODA에서 현지 행위자에 대한 직접 자금지원 비중은 최근 2년간 감소하고 있으며, 2013∼2022년까지의 흐름을 살펴봐도 현지 행위자에 대한 직접 자금지원 비중의 증가는 정체되어 있다(<그림 1>). 아울러, 2022년 기준 전체 양자 ODA 중 현지 시민사회단체(CSO) 지원 비중은 1.2%에 불과하고, 이는 DAC 회원국의 CSO 지원액 전체의 10% 미만으로 공여국 및 국제 CSO에 대한 지원이 전체 CSO 지원액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OECD 회원국들의 순수 양자 원조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다자기구를 활용한 ODA는 지속적인 증가추세(2010년 37%→2021년 45%)를 보이며 양자 원조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OECD, 2024e). 이는 글로벌 복합위기와 지정학적 위기 확산으로 인한 정치적 제약국가가 증가하는 상황하에서 DAC 회원국들의 협력국에 대한 직접 지원역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나온 전략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면서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는 자금 메커니즘을 강화하기 위해서, 현지 주체성을 강화하는 적절한 자금 전달 채널을 선택하고 다각화하는 것과, 현지로 직접 전달되는 자금의 양과 질을 높이는 것, 이 두 가지 주제가 핵심적으로 논의된다.
먼저, 현지 주체성을 강화하는 적절한 자금 전달 채널의 선택과 다각화에 대해 살펴보자. 현지로의 자금 흐름은 크게 협력국 정부와 시민사회단체(CSO) 또는 민간에 대한 직접 지원, 국제단체 등 중개자를 통한 지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 또는 부문 예산 지원, 프로그램기반 접근 등을 통해 협력국 정부를 직접 지원하고 협력국 재정 관리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식은 협력국 정부의 주인의식과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오랜 기간 강조되어 온 접근법이며, 여전히 DAC 국가들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현지에 대한 직접 자금지원 방식이다(OECD, 2024g). 아울러, 최근에는 중앙정부뿐 아니라 좀 더 지역사회에 반응적인(responsive) 지방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OECD, 2024g).
둘째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현지 맥락에 부합한 지식과 역량을 활용하여 개발과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인권, 민주주의, 여성권 등 주요 보편적 가치의 옹호자로서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현지 CSO에 대한 직접 지원을 들 수 있다. 특히, 민주주의 퇴행 및 권위주의화 경향이 강화되고, 정부 거버넌스가 시민들에 대해 반응적이지 않은 상황 가운데에서, 현지 정부를 우회하면서 효과적으로 현지 주민을 지원하는 채널로 활용될 수 있다(Cliffe et al., 2023). 아울러, 현지의 기업가 정신 함양과 혁신 등을 위한 민간 부문에 대한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다수 공여국들이 개발도상국의 혁신을 위한 챌린지 펀드에 대한 투자를 추진 중이다(Kumpf et al., 2024).
아울러, 국제기구를 통한 DAC 회원국의 지원이 증가하면서, 국제기구들이 보다 많은 자금을 현지 단체에 지원하고, 현지 주체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자금을 운영하여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현지주도개발 관련 논의(참여 활성화, 현지 지식과 역량의 인정 및 균등한 파트너십, 위험관리 및 자금지원 메커니즘 등)가 공여국뿐 아니라, 국제기구까지 그 대상이 확장되어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공여국들이 국제기구 이사회를 통해 또는 자금 지원시 인센티브 구조 설계 등을 통해 국제기구들의 현지주도개발 내재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논의로 요약할 수 있다(OECD, 2024c).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는 자금 전달채널의 선택에 하나의 정답은 없으며, 다양한 현지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공여국의 여건을 고려한 가운데 결정되어야 한다(OECD, 2024g). 현지 정부의 정당성과 거버넌스 효율성이 어떠한지, 현지 CSO가 정치화되지는 않았는지, 대표성을 띄는지 등 다양한 현지맥락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공여국 개발협력기관의 협력국 소재 여부, 법·제도적 제약 등 현실적인 제약요건들을 고려한 접근이 중요할 것이다. 분쟁·취약국가와 정치적 제약이 있는 국가들에 대한 지원시, 협력국 정부를 우회하여 다자기구나 협력국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을 추진하는 것은 쉬운 선택지이지만, 중장기적인 국가 구축을 위해 정부(또는 사실상의 정부)와도 대화와 협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함을 다수의 DAC 회원국들이 강조하고 있다.
현지로 지원되는 자금의 양과 질의 개선에 대한 DAC의 논의는 주로 현지 CSO에 대한 직접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된다. DAC은 2021년 7월 채택한 ‘개발협력과 인도적지원에서의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권고안’을 통해 현지 시민사회에 핵심(core) 자금과 프로그램기반 지원을 포함한 직접적이고 유연하며 예측가능한 지원의 접근성과 가용성을 증가시킬 것을 권고한 바 있으며, 동 권고안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협력국 CSO에 대한 자금지원’ 툴킷을 2023년 개발하였다(OECD, 2021, 2023c).
아울러, OECD(2024g)은 동료학습을 종합하면서, 현지로 지원되는 자금의 양과 질을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촉진요인들을 제안하고 있는데,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명확한 정책목표를 설정하는 것으로, 앞서 살펴본 USAID의 25% 현지단체 직접지원 목표, 프랑스의 현지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 2배 확대 목표9)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성평등을 위한 여성 단체에 대한 지원 확대를 현지단체 지원확대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표 사례로는 캐나다의 여성주의 국제원조정책에 기반한 여성단체지원기금을 들 수 있으며, DAC이 2024. 5월 채택한 ‘개발협력과 인도적 지원에서의 성평등 및 여성과 소녀의 역량강화를 위한 권고안’10)에서도 현지 여성단체에 대한 직접 지원을 늘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OECD, 2024b). 한편, 현지로 지원되는 자금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기간(다년간)의 예측가능하고, 유연한 자금지원, 현지 CSO에 대한 핵심(core) 자금 지원 확대, 적정 간접비 인정을 통한 현지 단체들의 주체성을 높이는 것 등이 제언된다.
현지로의 자금 지원 확대와 관련된 DAC 내 다른 논의의 흐름은 DAC 통계작업반에서 추진 중인 비구속화 권고안 개정 논의와 관련된다. Shift The Power Movement는 250개 이상의 개발도상국 위주 CSO가 서명한 ‘DAC 회원국들에 대한 공개 서한’을 통해, 공여국 CSO에 대한 핵심(core) 자금 지원이 구속성 원조에서 제외되는 기준11) 및 관행을 변경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Shift the Power Movement, 2024). 다른 비구속화와 관련된 논의는 조달의 현지화와 관련되어 있으며, 회원국 간 이견으로 비구속화 권고 개정안 자체에 포함되지는 않고 추가적 검토 후 가이드라인 수립 등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공여국의 노력이 단순한 수사(rhetoric)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진전을 측정하는 프레임워크를 설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따라, 현지주도개발을 사업수행체계에 내재하고자 하는 기관들은 현지주도개발 진전 측정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선도적으로 정량적이면서도 명확한 방식으로 현지화 목표와 지표를 설정하고,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있는 기관은 미국 USAID이다. 여기에서는 먼저 USAID의 목표 측정 방식 및 모니터링 결과에 대하여 논하고, OECD가 동료학습 결과로 제시한 측정 접근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USAID가 현지화 비전을 발표하면서 공표한 두 가지 목표 중, 첫 번째 목표인 ‘기관 프로그램 예산의 25%의 현지 파트너에 지원’ 지표 측정과 관련하여, 가장 논쟁적인 이슈는 ‘현지 파트너의 범위에 대한 정의’와 ‘25% 목표를 적용받는 기관 예산의 규모(분모값)’로 볼 수 있다.
먼저 현지 파트너의 정의가 중요한 이유는 현지에서 활동하는 단체의 법적, 실질적 성격이 매우 다양한 바, 느슨한 정의 채택시 국제CSO 등이 현지 지부를 설립한 이후, ‘현지’ 기준을 충족하여 실질적 변화가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Green, 2022). USAID는 현지화를 위한 직접 자금지원에 대한 KPI 정의서를 별도로 발간하였으며, 여기서 현지 파트너는 ‘개발도상국의 법령에 따라 조직되고, 본부 및 핵심사업의 근거지가 개발도상국인 개인, 회사, 비영리단체’12)로 정의된다(USAID, 2023a). 아울러, 데이터를 기존의 USAID 조달시스템을 통해 수집하고 있으며, 계약 기본정보 및 분류내역 데이터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공개된 USAID의 2020∼2023 회계연도 데이터를 살펴보면, Deloite의 우간다, 탄자니아 현지법인, World Vision의 케냐, 페루, 스와질랜드 법인, Save the children의 남아공, 필리핀 법인 등 국제 컨설팅 기관 및 국제 CSO의 일부 현지 법인이 현지 단체에 대한 지원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USAID, 2024c). 이들이 선진국에 소재한 기관 본부와 법적, 실질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불명확하여 국제적 브랜드를 가진 현지 법인이 현지단체로 분류되는 것 자체를 문제라고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향후 국제 CSO 및 컨설팅 기관들이 우회적으로 현지 법인을 설립한 후, 현지 단체로 등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토 및 논의가 필요한 사항으로 생각된다.
다음으로 25% 목표치를 적용받는 예산의 규모(분모값: denominator)는 ‘총 개발 & 인도지원 조달 & 지원(Acquisition and Assistance, A&A) 자금 중 협력국 정부에 대한 지원, 기관 간 약정, 개인용역계약, 국제기구 약정이 제외된 금액’13)으로 정의되어 있다(USAID, 2023a). 이러한 금액은 2023 회계연도 기준 156억 불이며, 이중 15억 불이 현지 파트너에게 직접 지원되어 현지 직접지원은 9.6%라고 USAID의 현지화 이행 보고서는 언급하고 있으나, 2023년도 USAID의 A&A 총 자금이 381억 불인 바, 이를 감안하여 동 비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USAID, 2024a,b).
한편, USAID 현지화의 두 번째 목표인 ‘사업 프로그래밍의 50% 이상을 현지 커뮤니티가 주도’는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 설정이 더욱 어려운 목표이다. USAID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지 리더십을 촉진하는 14개의 모범사례를 선정하여 각각의 정의서를 작성하고, 이를 ‘직접적 현지 자금지원’, ‘효과적인 현지 파트너십 형성’, ‘현지 역량에 대한 인정과 투자’, ‘커뮤니티 직접 참여’라는 4대 분야로 구분하였다(<표 2>). 그리고, 위 4개 분야 중 최소 2개 분야에서 2개 이상의 모범사례를 반영하는 사업인 경우, 현지주도사업으로 인정하는 지표를 발표하였다(USAID, 2023b).
분류 | 모범 사례 |
---|---|
직접적 현지 자금지원 | 1. 현지 또는 지역 파트너와 직접 파트너십 형성 |
효과적 현지 파트너십 형성 |
2. 현지/지역 파트너와 공동 창조 3. 현지/지역 파트너에 지시적이지 않고 설명적인 형태의 지원 4. 현지/지역 파트너의 충분한 비용 회복(cost recovery) 지원 |
현지 역량에 대한 인정과 투자 |
5. 수요기반 역량 강화 접근 사용 6. USAID와 직접 작업하기 위한 현지/지역 파트너의 준비성 강화 7. 현지에서 정의된 측정법을 활용하여 프로그램의 성공 측정 8. 현지 보조(하도급) 계약 체결 9. 주 계약에 전환계약과정(transition award process)14) 포함 10. 현지 평가전문가와 함께 평가 수행 |
커뮤니티 직접 참여 |
11. 활동 설계를 위한 의견 청취 투어 수행 12. 현지 커뮤니티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와 공동 창조 13. 현지 커뮤니티와 환류 및 책무성 제도화 14. 참여적 모니터링, 평가, 학습 이행 |
출처: USAID(2023b).
동 지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협의를 통해 개발된 프레임워크이기는 하지만, 14개 중 2개 사례의 이행시 목표달성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 기준이 낮다는 비판적 목소리가 있다. USAID(2024a)는 2023 회계연도에 동 지표에 대한 시범 측정을 실시한 결과, 이미 53%의 이행률을 기록한 것으로 측정되었으며, 시범 측정 과정에서 사업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모범사례의 재분류, 현지 주도로 인정되는 기준 상향 등의 의견이 제기되어, 추후 동 교훈을 반영한 지표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 USAID 이외에 자체적인 현지주도개발 측정 방법론을 개발한 국가는 호주, 캐나다 등이 있으며, 덴마크, 아일랜드, 스위스 등의 공여국들도 국제기구와의 파트너십 등을 통해 현지주도개발 측정 프레임워크를 도입하고 있다(OECD, 2024d).
하지만, 모든 상황과 맥락에 적용되는 통일된 접근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지 행위자의 범위에 대한 정의의 복잡성, 1차 전달채널만 파악되는 현 OECD 통계시스템의 한계, 추가적인 데이터 수집을 위한 행정부담 등으로 표준적인 측정 방법론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OECD(2024d)는 이미 수집 중인 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 4층위 접근법(four-layered approach)을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있다.
첫 번째 층위(layer)는 ‘현지로 지원되는 자금의 양과 질’을 측정하는 것으로, 기존의 DAC 통계보고시스템(Creditor Reporting System, CRS)을 활용하여 채널코드(channel codes)를 양(quantity)의 대리지표로, 원조유형코드(aid type codes)를 질(quality)의 대리지표로 사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때, 양을 측정하는 채널코드에는 협력국 정부, 현지 NGO 및 민간 부문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고, 질을 측정하는 유형코드에는 예산지원(budget support)과 핵심(core) 자금 공여를 현지 주체성(agency)이 높은 양질의 자금지원으로 포함한다. 아울러, 프로그램 기반 접근(Programme-Based Approach, PBA) 마커는 그 정의상 현지 조직의 리더십을 전제하는 바, 자금의 양과 질에 대한 대리지표에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것을 제안한다(<표 3>).
수혜자 대리지표(자금의 양) | 주체성 대리지표(자금의 질) |
---|---|
전달 채널 코드 | 원조 유형 코드 |
수원국 정부(중앙, 지방, 공공기관) 협력국 NGO 협력국 민간 부문 |
일반 예산지원 부문 예산지원 협력국 NGO/민간/연구기관 핵심자금 지원 |
프로그램 기반 접근 마커(PBA) |
출처: OECD(2024d).
CRS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은 단순 명료하며, 국제적 비교가 쉽고, 회원국의 추가적 보고 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CRS 데이터를 활용한 현지 NGO에 대한 지원금액 및 비중에 관한 데이터는 이미 많은 보고서에 인용되며 논의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CRS 데이터 중 전달채널의 경우, 1차 수혜자 정보만 보유하여 중개자를 통한 자금흐름을 놓치는 단점을 갖고 있다. 국제 또는 공여국 중개자를 통해 현지 단체에 2차로 자금이 전달되는 경우 현지로의 자금 흐름이 과소 평가될 수 있으며, 반면 협력국 정부에 대한 직접 자금지원이 국제 또는 공여국 기관에 2차 계약을 통해 재전달될 경우 현지로의 자금 흐름이 과대 평가될 수 있다.
시범적으로 OECD에서 동 측정법으로 DAC 회원국의 2021∼2022년 양자 ODA 중 현지주도 ODA 비중을 측정해본 결과, 상위 3개국을 일본, 프랑스, 한국이 차지하였다(OECD, 2024d). 그런데, 이들 국가들은 유상원조 비중이 다소 높은 국가들로서, 유상원조의 경우 수원국 정부를 1차 전달채널로 활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때, 한국과 같이 유상원조의 구속성(tied) 비중이 높은 국가는 실질적으로 공여국 기업에 전달되는 자금이 다수임에도 이것이 포착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DAC 통계작업반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자, 보조 계약 등에 대한 정보를 보고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으며(OECD, 2024d), 현 보고시스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미 축적된 광범위한 CRS 통계데이터를 활용하는 방안은 향후 지속적으로 논의가 확대될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층위로 제안되는 것은 GPEDC 모니터링을 활용하여 현지주도개발의 효과성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GPEDC 모니터링 지표들 중 현지주도개발과 관련된 지표들을 모아 주체성(agency)의 영역별로 분류(mapping)하여 별도의 프레임워크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GPEDC 모니터링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며 협력국 주도로 실시된다는 점에서 협력국이 바라보는 공여국에 대한 현지주도개발의 기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추가 데이터 수집 부담을 발생시키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GPEDC 모니터링의 시기는 국가별로 상이하여15), 시기적절한 글로벌 비교가 제한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앞의 Ⅲ-2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OECD는 동료학습에서 활용되는 현지주도 개발협력을 ‘프레이밍, 기획, 이행, 책무성과 학습의 영역에서 현지 행위자의 주체성(agency)을 인정하고 촉진’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여기서 현지 행위자 주체성의 4대 영역(four dimensions of local actor agency)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 프레이밍(framing)은 개발 우선순위와 기준의 설정을, 둘째 기획(design)은 전략, 프로그램 및 파트너십 메커니즘의 설계를, 셋째 이행(delivery)은 자금지원과 프로그램의 집행을, 넷째 책무성(accountability)은 책임 & 학습 주체의 정의(locus)와 모니터링․평가․학습(Monitoring, Evaluation & Learning, MEL)을 포함한다.
현지 행위자의 주체성의 정도는 <표 4>와 같이 생략(omitted), 협의(consulted), 공동책임(co-responsible), 주책임(primarily responsible)의 4단계 스펙트럼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OECD는 현지주도개발 진전 측정의 세 번째 층위로 주체성의 4대 영역 각각에서의 스펙트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분석을 제안하고 있다.
출처: OECD(2023a).
이러한 방법론은 현지의 지식과 가치, 전문성의 인정 및 동원에 초점을 맞추고, 권한의 동학(power dynamics)을 이해하며, 어느 영역에서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유용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체성 및 권한의 정도를 비교 가능토록 측정하는 프레임워크 구성은 어려우며, 다양한 협력국 맥락 및 공여국의 정치경제적 환경, 제도 및 프로그램의 성격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마지막 4번째 층위로 OECD는 정책, 제도, 재정, 관리시스템 등 각 부문별로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촉진요소들을 매핑하고, 이행을 위한 지표들을 정량적으로 설정하여 측정하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동 방법론에 따라 설정 가능한 지표들은 <표 5>와 같은데, 협력국 및 공여국의 맥락에 맞게 수정될 수 있으며, 예시적인 목적으로 제안된 점임을 언급하고 있다.
출처: OECD(2024d), 저자 재구성.
DAC의 현지주도개발 동료학습은 2024.9.20 종합보고서 발간으로 종료되었지만, DAC 내에서의 현지주도개발과 관련된 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3년 DAC 고위급회의(high level meeting) 공동성명은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법과 측정 방법, 공통의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데(OECD, 2023a), 이에 따라 동료학습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한 DAC 차원의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가이드라인 수립작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동 의제가 DAC을 넘어서 2025년 개최될 제4차 개발재원총회(The Four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inancing for Development, FFD4) 등 보다 넓은 차원에서 확산될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먼저 동 의제가 개발도상국 정부에 환영받는 의제가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비록 DAC이 동료학습에서 현지 행위자의 범위에 협력국 정부를 포함하였지만, 다수의 논의들이 협력국 시민사회 및 민간 부문에 대한 직접지원과 연계되며, 이를 협력국 정부를 우회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 의제를 가장 선도적으로 이행하는 미국의 금년도 대선 이후, USAID의 정책 우선순위가 변동된다면, 큰 추동력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아울러, 현지주도개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DAC 회원국들이 반대하기 어려우나 다양한 국내정치적 상황 등으로 실질적인 이행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Ⅳ. 한국 ODA에의 시사점
한국은 포용적 파트너십 원칙을 천명한 2011년 부산세계개발원조 총회의 의장국이었으며, 인도적 대합의 가입국(2020년 가입)이자, ‘현지주도개발 지지 공여국 성명’의 서명국이다. 이와 같이 현지주도개발과 관련된 국제적 공약에 적극 참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개발협력 정책 문서에서 현지주도개발 관련 내용을 명시적으로 찾기는 어려우며 관련 논의도 제한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먼저 한국의 중기 개발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1∼2025)’에서, ‘인도적 대합의 권고사항 준수’와 ‘현지시민사회와의 협력’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전략목표, 중점과제, 이행기반의 주요 내용에서 현지주도개발과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기는 어렵다(국제개발협력위원회, 2021). 그 이후의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의결된 문서들에서도 현지주도개발을 주제로 한 언급은 잘 나타나지 않으며, 그나마 2022.11월 의결된 ‘민간 부문 참여 전략’에 임팩트 투자 등 협력국 민간 부문에 대한 지원이 언급되어있는 정도이다(국제개발협력위원회, 2022). 또한, 한국정부의 현지 CSO에 대한 직접 지원은 아주 미미한 수준인데, DAC 통계 기준 2022년 기준 전체 CSO에 대한 지원 중 1.9%만이 현지 CSO에 지원되었다(OECD, 2024a).
무상원조 대표 시행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기관의 정책 및 전략문서에서 현지주도개발을 명시적으로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2010년대 이래로 현장화 또는 현장 중심 사업수행 강화를 목표로 한 제도개선이 다수 이루어져 왔으나,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통한 효율성 및 효과성 개선이 주요 목적이었으며, 현지 행위자의 주체성을 강화하거나 균등한 파트너십을 목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OICA 개발협력사업의 효과성 증진을 위한 사업수행체계 개선 과정에서 일정 부분 현지 행위자들의 참여가 활성화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으로 한국 전문가의 현지 파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발굴 및 기획, 수행을 위한 현지 전문인력 활용이 보다 활발해졌으며, 이후에 관련 내규(전문인력 업무처리에 관한 지침)도 정비되며, 현지 전문가 활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확립되었다.
한편, KOICA 중장기 경영목표(2024∼2028년)상 34대 세부실행과제의 하나로 ‘현지 CSO의 성장과 상생협력 확대’를 설정하고, 시민사회협력사업을 수행하는 국내 CSO와 현지 CSO 간의 협업강화를 지속 추진하고 있다(한국국제협력단, 2024b). 아울러, 2024년에는 현지 CSO에 대한 직접 지원사업을 시범 추진하고 있으며, 국내 CSO를 대상으로 한 2025년 신규사업 공모시부터는 현지 CSO와의 협업을 필수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한국국제협력단, 2024a). 이와 함께, 협력국의 공공 재정관리 및 조달시스템을 활용하는 사업 추진이 아프리카 등지에서 확산되고 있으며, 가나 보건분야 사업을 대상으로 한 종료평가 결과, 협력국 시스템을 활용한 것이 사업의 효과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인 요인으로 평가된 사례도 있다(양봉민, 2023).
하지만,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과 프레임워크가 부재하고, KOICA 사업의 기획과 수행, 모니터링 및 평가 과정에서 현지 행위자의 참여는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지 않으며, 도구적 관점을 넘어서서 현지 주체성(agency)을 사업의 전 영역에서 인정하고 촉진해야 한다는 인식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내 현지주도개발 의제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며, 이해하더라도 현지 CSO에 대한 직·간접적 지원의 확대 정도로 좁게 이해되는데 비해, DAC의 논의는 그보다 훨씬 방대하며, 개발협력 정책과 전략, 그리고 사업의 기획과 수행, 모니터링, 평가 전 과정에서의 변화를 수반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USAID가 2021년 현지화 비전을 발표한 이후, 현지역량강화정책 수립, 조달 및 지원(A&A) 전략의 개정, 위험성향진술서의 개정, 조달 시스템과 사업수행체계 전반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은 이러한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우리나라 ODA에서도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국내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전에는 이와 관련된 학계의 논의가 별로 없었으나, 최근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와 한국교통연구원에서 각각 시민사회 관점과 교통 분야 관점을 적용한 현지주도개발과 관련된 정책연구 보고서를 발간하였으며(신재은 외, 2023; 신희철 외, 2024), 2024년 7월 KOICA가 개최한 제58회 개발협력포럼에서는 ‘수원국의 탈민주화 현상과 현지주도개발의 중요성’이 하나의 의제로 논의되는 등, 동 의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모습이 관찰되고 있다.
한편, OECD DAC이 2024년 5월에 발간한 한국에 대한 동료검토(peer review) 보고서에서는 ‘현지 시민사회와의 협력 확대, 현지 주체 역량강화와 현지주도개발을 촉진’하라는 권고사항16)이 제시되었는데(OECD, 2024f), 권고사항 이행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 현지주도개발 의제를 한국의 정부,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확산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기회들 가운데에서 한국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국제적으로 공약한 내용에 부합하게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정책적 프레임워크 설정을 고민해 보아야 할 시기라고 생각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지주도개발에 대한 하나의 정해진 정답은 없다. 따라서, 글로벌 개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현 ODA 정책과 전략, 관련 생태계와 이해관계자 의견 등을 종합하여, 한국 ODA가 지향하여야 할 현지주도 개발협력의 방향성과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2026년부터 적용될 국제개발협력 4차 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동 의제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와 검토가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상원조 시행기관인 KOICA 차원에서는, 먼저 현재 사업의 기획, 수행, 평가 과정 가운데 현지 행위자들의 참여와 지원 현황, 법·규정, 위험관리를 포함한 사업수행관리체계의 작동 현황, 해외사무소 현지직원을 포함한 직원 역량 현황 등 현재 상태(As-Is)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후, 글로벌 개발환경과 기관의 역량을 포함한 내외부적 제약조건 등을 고려하여 기관 차원의 현지주도 개발협력 지향점을 설정하여 이를 중장기 경영목표에 선제적으로 반영하고, 당장 추진할 수 있는 과제(quick-win), 그리고 중장기적 과제를 도출하여 단계적인 추진을 모색해 나가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